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존 버거 지음, 강수정 옮김 / 열화당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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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인생이라는 건 본질적으로 선을 긋는 문제이고, 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지는 각자가 정해야 해. 다른 사람의 선을 대신 그어 줄 수는 없어. 물론 시도는 해 볼 수 있지만, 그래 봐야 소용없는 일이야. 다른 사람이 정해 놓은 규칙을 지키는 것과 삶을 존중하는 건 같지 않아. 그리고 삶을 존중하려면 선을 그어야 해-16쪽

얘기 하나 해줄까? 저 아래쪽에 있는 상타 주스타 타워를 신경 써서 본 적 없지? 저건 리스본 트램웨이라는 회사의 건물이거든. 안에 승각이가 있지만, 뭐 대단한 건 아니야. 그걸 타고 올라가서 전망을 감상하고 다시 내려오는거지. 전차를 운영하는 회사의 소유야. 그런데 영화도 똑같은 것 같아, 존. 우리를 들어 올렸다가 같은 자리에 다시 내려놓으니까. 그것도 사람들이 영화관에서 우는 이유 중의 하나란다.
제가 생각했던건...
생각 좀 하지 말래도! 영화관에서 눈물을 흘리는 데는 표를 사서 들어간 사람 수만큼의 이유가 있는 거니까. -23쪽

학교에 가기 전까지는 도무지 끝이 나는 게 없었어요. 어렸을 때 제가 제일 신기해 했던 물건이 뭔지 아시겠어요?
자서전을 쓰는 사람처럼 들리는구나. 그러지 마!
뭘 그러지 마요?
그런건 틀리게 돼 있어.
어렸을 때 제가 제일 신기해 했던 물건이 뭔지 맞춰 보시겠어요?
그냥 말해.
어머니의 기압계요!-28쪽

목소리는 들리는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혼자 앉아 있다.
어떻게 그분에게서 진찰을 받나요? 친구분들 말이에요.
박사의 진료시간은 그분이 잠을 잘 때거든.
마르틴스 박사는 한 세기 전에 죽었어요.
죽은 사람들도 잠을 잘 수 있잖니?
어떤 통증을 호소하나요? 그에게 진찰을 받는 어머니 친구분들이요.
부푼 희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지. 우리 사이에서 부푼 희망은 거의 산 사람들의 우울증만큼이나 일반적이거든.
거기선 희망을 병으로 보나요?
다시 삶에 개입하고 싶어하는게 말기의 대표적인 증상이고, 우리에겐 그게 치명적이니까.-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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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드림~ 2006-04-05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 이승을 떠난 이가 삶에 다시 개입하고 싶어하는 건가요? ㅎㅎ 그럴수도 있겠네요. 써주신 글 중 특히 23페이지의 이야기가 좋네요.^^

하이드 2006-04-05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이야기들이 너무 많습니다.
소설로는 절대 안 보이는 소설+에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