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플라스의 마녀 라플라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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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시원하실 때까지 마음껏 수사해주세요-.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으면서.

그건 죄가 없는 인간의 얼굴이 아니다. 나카오카는 그렇게 확신했다.

 

온천마을에서 젊은 신부와(삼십대) 함께 방문한 늙은 남편이(육십대) 황화수소 중독으로 죽는다. 사고로 처리되고, 지역은 봉쇄된다. 조사를 위해 지구과학을 전공하는 아오에 교수가 방문한다. 그곳에서 우연히 보게 된 이제 이십이나 되었을까 싶은 마도카를 멀리 떨어진 온천 마을의 두 번째 사고에서 다시 보고 사고사로 처리된 각각의 죽음이 미심쩍어 보이게 된다. 그렇게 두 사건의 연결점을 조사하는 아오에 교수와 첫번째 사건에서 아내가 보험을 목적으로 남편을 죽인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 형사 나카오카 역시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을 조사하다 아오에 교수를 만나 사건성을 확신하고 파고 들게 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은 그래도 늘 일정 이상의 재미를 보장한다. 사회파 추리소설가 답게 '의미'도 찾기 쉽게 보여준다. 어느쪽이냐하면, 재미가 우선이겠지만, 그리고, 사건을 진행시키기 위해 우연적이고 작위적인 설정들이 들어가긴 하지만,  캐릭터나 이야기들이 재미있어서 오백페이지가 넘는 책도 술술 읽어나갈 수 있었다.

 

'미래'와 '기후' 이야기가 소재인 것도 요새 시류이긴 하나, 이전에 읽었던 '몽환화'의 주제가 더 쎄하게 다가오긴 했다.

 

읽는 동안 다카즈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도 생각나고, '백야행'의 커플도 생각나고, 히라노 게이치로의 '결괴'의 범인까지..이런저런 책과 인물들이 떠올랐다.

 

'진실' 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위선과 위악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지금과 같은 시대라면, 차라리 '위선' 이 세상을 더 좋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닌가. 내가 생각하는 위선은 '시스템'이기도 한데, 그건 크게는 국가, 사회, 작게는 가족, 친구, 연인간에도 적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윽고 아마카스 씨는 어떤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내 눈에 보였던 것이 모든 것.이라고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어요. 속사정이니 진실이니 그런 건 아무런 힘도 없다. 아내와 딸, 그리고 아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많이 누리지 않았느냐, 그거면 되는 거 아니냐, 라고요.

'내 눈에 보였던 것이 모든 것' 이라고 형사는 노트에 메모했다. 아마카스의 사정을 읽는 동안, 아, 그것이 현명한 일이겠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마카스와 '상대방'은 그 '진실' 에 대해 핑퐁처럼 왔다갔다 설전을 나누게 된다. 읽다보니 위선, 위악의 문제가 아니라 숨겨진 진실. 에 대한 이야기이긴 했지만..

 

흥, 진실? 웃기는 소리를 하는구나. 그렇다면 좀 물어보겠는데, 진실이란 게 뭐지? 그걸 누가 판정하는 건데? 결국은 기록된 것만이 진실이야. 기록되어서 사람들이 인식해주었을 때, 그게 바로 진실이야. 이 폐허를 봐. 이 건물에는 어떤 진실이 있지?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건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채 사라져버린 것은 진실이라고 할 수 없어. 그런 의미에서 대다수의 범용한 인간들은 아무런 진실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버리는 거야. 인터넷을 봐. 타인의 험담과 하소연만 가득하지? 공격의 창끝을 겨눌 곳을 찾아내면 앞다투어 비난을 퍼붓고 있어. 스스로는 아무것도 창조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그러면서 제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마냥 불평만 늘어놓는 인간들이 어떤 진실을 만들어낼 수 있지? 진실이라는 단어로는 알아듣기 힘들다면 역사라고 말을 바꿔도 좋아. 그런 인간들은 태어나든 태어나지 않았든 이 세상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해.

과연 그럴까?

 

예전이라면 와닿았을 이야기들이 지금은 술술 넘어간다. '존재의미가 없는 개체따위는 이 세상에 없어' 라는 말이 맞는건 알겠는데, 와닿지가 않는다고. '라플라스의 악마'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존재의미가 없는 개체들이 늘어만 가고 있는 것 같은 밝지 않은 기분이라서 말이다. 이건 라플라스의 마녀나 악마가 아니라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수학자 라플라스를 아십니까? 풀네임은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 프랑스 인이에요.

만약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원자의 현재 위치와 운동량을 파악해내는 지성이 존재한다면 그 존재는 물리학을 활용해 그러한 원자의 시간적 변화를 계산할 수 있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고 미래까지 완전하게 예지가 가능하다.

라플라스는그런 가설을 세웠습니다. 그 존재에는 나중에 '라플라스의 악마'라는 별명이 붙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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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3-26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크스의 산 리뷰를 보고 오게되었습니다.
저도 경찰소설을 좋아하는데요. [마크스의 산]과 [야성의 증명]중에 어느쪽이 경찰물 장르소설로서 장르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하시는지 알고싶습니다~ 둘의 차이점도 알고싶구요. 리뷰글을 보니까 경찰물 소설에서 두 소설을 극찬하셨더라구요. 혹시 제 말투나 태도가 실례되지 않는다면 가르쳐주실수 있다면 감사하겠습니다.(__) 대뜸 댓글 올리는게 실례가 될까 죄송합니다.

하이드 2016-03-26 10:06   좋아요 0 | URL
제가 다카무라 가오루를 워낙 좋아해서요. < 마크스의 산> 이 매니아들의 평가가 높고, <야성의 증명>은 작가 인지도와 `증명 시리즈`로 유명하죠. 경찰소설을 쓰는 작가마다 각각의 스타일이 있는데, 다카무라 가오루는 경찰이란 조직내의 계급, 사람 들을 잘 그리고, 모리무라 세이치의 작품에서는 사회내의 인간이고, 조직내의 인간인건 변함없지만, 범인과 형사의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부분이 부각된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작품으로 좋아하는건 마크스의 산이고, 야성의 증명, 인간의 증명의 강렬한 메세지를 좋아합니다.

. 2016-03-26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굳이 비밀댓글로 달지 않은것은 다른 분들도 두 책의 차이를 궁금하셨을수도 있고 나중에 댓글을 보고 독서에 도움이 됐으면 해서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