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이별 레이먼드 챈들러 선집 6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 북하우스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챈들러는 '기나긴 이별'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며 쓴 편지에서  '나는 이것을 내가 원하던 대로 썼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그럴 수 있게 됐으니까요' 라고 말한다.

필립 말로 시리즈의 마지막인 이 작품을 아끼고 아끼다 집어들었다. 600페이지가 넘는 긴 분량 때문만은 아니다. 이전작품들에서 느끼지 못했던 산만함때문에, 읽는내내 궁시렁거리긴 했지만, 역시 챈들러고, 역시 말로다. '기나긴 이별'을 열두번도 더 읽었다는 하루키. 챈들러의 말로 시리즈의 실질적인 마지막 작품을 드디어 읽어버렸지만,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빅슬립'부터 읽어낼 생각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말로는 술집 앞에서 만취한 테리 레녹스를 만나다. 요부타입의 억만장자의 방탕한 딸, 실비아가 버리고 간 그를 주워다 집으로 데려가는 말로. 어울리지 않는 그들은 친구 비슷한 모양새가 된다. 가끔 만나서 막 문 연 바에 가서 김릿 한잔 나누는 사이가 된다. 실비아는 잔인하게 살해당하고, 테리는 멕시코로 도망간다. 말로가 새로 의뢰받은 일은 웨이드라는 알콜중독의 베스트셀러 작가를 돌보는 일이다. 말로는 거절한다. 가는 곳마다 사건을 몰고다니는, 시체의 늪에 빠져버린듯한 말로는 없다. 바로 전작인 리틀 시스터에서의 어리광부리고, 우울한 말로도 없다. 이전작들에 비해 더 개인적이고, 더 말로적으로 사건은 일어나고, 해결된다.


챈들러의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 중에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의 구별은 없다. 다만 나쁜 사람과 덜 나쁜 사람의 구별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 모두중에는 범인도 있고, 사기꾼도 있으며, 피해자도 있고, 경찰도 있고, 시체도 있다. 그리고 사립탐정도 있다. 하드보일드 세계에서 그들 모두는 '인생' 이라는 거대한 적 앞에서 패배자이다.

' 이별을 말하는 것은 조금씩 죽어가는 것이다.'
이 이별은 싱겁고, 아쉽고, 헤어나기 힘들지만, 이제 말로에게 '이별'을 고해야 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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