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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9월
평점 :
줌파 라이히, 괜찮지, 나쁘지 않지. 좋아.
정도에서 '이 작은 책'을 읽고 오오, 줌파 라이히시여!!! 가 되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을 좋아하지만, 늘 마음 뿐이고, 올해도 지키지 못한 계획으로만 남기며 한 해, 한 해를 보내는 것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고 나에게, 남에게 말하고 다니고, 이것저것 직접대기도 많이 했으며, 지치지도 않고, 새해의 계획을 세울때면 , 계획을 세우고 지키지 못하고 흘려보내는 것이 몇십번이나 반복되어, 계획을 세우는 내 자신도 민망할법도 하지만. 내가 아직 습득하지 못한 외국어를 꼭 계획에 넣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외국어를 배워본 사람, 배우고 있는 사람,배울 사람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외국어 공부 책이 여기 있다. 그러니깐, 학교를 다닌 우리나라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인도에서 미국으로 간 줌파 라이히의 부모님, 그녀는 부모님처럼 뱅갈어를 썼고, 집에서는 뱅갈어만을 쓰도록 강요받는다. 서툰 영어로 유치원에 다니게 되고, 영어를 완벽하게 하게 되고, 영어로 글을 써 퓰리처상까지 받게 된 그녀가 새롭게 배우게 되는 언어는 이탈리아어이다.
작가라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 그녀가 태어나면서부터 배운 가족의 언어 뱅갈어, 그녀가 자라면서 그녀의 언어가 된 영어, 그리고 그녀가 어른이 되어 새로이 선택한 언어인 이탈리아어. 새로운 언어를 배우며, 기존의 언어들을 새로이 이해하고 화합하고, 그리고 새로운 언어인 이탈리아어로 이렇게 책을 냈는데, 그 과정을 너무나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그간 읽어왔던 줌파 라이히의 소설들 중에 설레는 로맨스는 없었던 것 같은데, 이 로맨스에는 계속 설레였다.
내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작가중 하나가 된 안토니오 타부키의 글로 시작한다.
나는 다른 언어가 필요했다.
정감 있고 성찰이 담긴 언어를 원했다.
안토니오 타부키
어떤이들은 책을 읽을때 목차를 꼭 읽으라고 목차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내 경우에는 그냥 흘리는 편이다. 이 책에서는 목차 또한 아름다워서 그냥 흘릴 수 없다.
'건너기' - '사전' - '번개에 맞은 것처럼' - '추방'- '대화' - '거부'- '사전을 가지고 읽기'- '단어줍기'- '일기' -'단편'- (단편) '변화' -'부서지기 쉬운 피난처'- '불가능'- '베네치아' - '불완료과거' -'털이 부승부승한 청소년' - 두 번째 추방' - '벽'- '삼각형'- '변신'-'탐색하다' - '공사 가설물' - (단편) '어스름'
차례의 제목들을 옮겨 적으며, 책을 다시 읽는것처럼 그 내용들이 사르르 떠오른다.
처음 책소개와 작가 이름을 보고, 영어권 작가가 이탈리아어 공부하고 이탈리아로 글썼네. 정도로 생각했는데, 작가도 언급하지만, 러시아 작가가 완벽하게 영어로도 글을 썼던 나보코프나 프랑스어로 글을 썼던 베케트 등의 예를 들고, 유럽권 작가들이 번역도 많이 하고, 두 언어 이상을 하는 것이 새로운 광경도 아닌지라 줌파 라이히도 비슷한 경우인가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이탈리아를 배우는 과정' 에 있고, 그녀가 언어를 배우는 과정은 열렬한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었고, 이 책은 그 사랑의 첫번째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이야기를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으며, 상상해본 적도 없다.
이탈리아에서 일년 정도 살면서 이탈리아어만을 듣고, 말하고, 읽던 중에 문학 축제에 초대받고 '승자와 패자' 라는 주제에 대해 짤막한 글을 써 줄 것을 요청 받는다. 영어권 작가들과 이탈리아권 작가들이 만나는 자리이고, 영어와 이탈리아어 두 가지 언어로 글이 소개된다. 줌파 라이히는 여기서 이탈리아어로 글을 써보기로 결심하고, 이탈리아어로 글을 쓴다. 내키지 않았지만, 남편의 충고에 따라 자신이 자신의 이탈리아어를 영어로 번역하게 되는데, 새로운 언어로 써 낸 글을 기존의 언어로 번역하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충격을 받게 된다.
영어와 이탈리아어가 책상 위에서 서로 맞붙었지만 승자는 벌써 명백하다. 번역 글이 본래 텍스트를 잡아먹고 그 위에 올라서고 있다. 이 치열한 싸움이 축제의 테마, 내 글 자체의 주제를 예시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탈리아어를 지키고 싶다. 그래서 갓난아기처럼 이탈리아어를 품에 안았다. 품에 안고 쓰다듬고 싶다. 아기처럼 이탈리아어도 잠자고 먹고 커야 한다. 이탈리아어에 비해 영어는 다 큰 청소년, 털이 부숭부숭하고 냄새나는 청소년같다 저리 가, 난 영어에게 말하고 싶다. 네 동생을 귀찮게 하지 마, 자고 있잖아. 네 동생은 뛰어놀지 못해. 너처럼 독립적이고 아무 근심 없이 활기차게 뛰어놀 수 있는 소년이 아니라고.
이제 이탈리아어와 내 관계를 다른 식으로 설명해야겠다고, 새로운 은유를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나와 이탈리아어의 관계는 늘 낭만적인 것이었다. 번개를 맞은 것처럼 사랑에 빠진 관계였다. 이제 나 자신을 번역하면서 나는 내가 두 아이의 엄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탈리아어에 대한 내 태도가 바뀌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책은 '연애소설'이라고 해도,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책을 다 읽고 덮자마자, 내가 그 동안 직접거리기만 했던, 언어들. 가까이 가고 싶어 정말 몇십년째 매 해 다가가 문을 두드리지만, 날씨 인사 정도밖에 못하는 일본어, 사랑보다는 의무로 만나 가까워졌지만, 그 이상 깊어지지 못했던 영어, 한때는 친했지만, 소원해진지 오래인 독어, 깊은 관계는 아니었지만, 만나는 동안 좋았고, 늘 동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프랑스어..그들 중 어느 하나라도 당장 꺼내어 이번에야말로 꼭 붙들어 내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든다. 책장에서 한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쓰인 책을 아무거나 꺼내어 단어줍기라도 해보고 싶은 기분이 든다.
책에는 이탈리아어가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많이 나온다. 전혀 알지 못하는 언어지만, 이탈리아어와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전혀 인연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십대의 마지막 생일에 맞춰 조르바를 보러 크레타 섬에 갔고, 크레타섬에서 이탈리아의 바리로 가는 지중해를 건너는 페리를 탔다. 바리 공항에서 런던으로 들어가는 일정이었는데, 바리에서 하루를 묶게 되었다. 공내 인생에 단 하루, 그렇게 이탈리아땅에 발을 디뎠는데, 그 때 기억나는건, 묵었던 호텔앞 광장, 그리고 공항에서 본 모델같은 이탈리아 남자, 그리고, 바리 공항의 서점이었는데, 그 서점에 있는 책들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책들을 쓰다듬어보며 읽지도 못하는 이탈리아어로 쓰인 칼비노의 책을 한 권 사서 왔다. 지금도 어딘가에 있을텐데. 그 짧은 순간 아름답다 감탄만 하지 않고, 사랑에 빠졌다면, 이탈리아어도 만날 수 있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