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은 당신에게 '일어나는 것' 이 아니라, 당신에게 일어나는 어떤 것으로 당신이 '어떻게 하는 것' 이다.
-53쪽
그때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물방울무늬 원피스. 물방울무늬 언피스는 트랜드나 패션이 아니다. 그것은 분 냄새나 마스카라, 혹은 뾰족구두같이 여성의 원형적인 향수를 환기시키는 하나의 기호처럼 느껴진다. 자신의 생에서 반복될 뿐 아니라,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그 딸의 딸에게로 재생되는 여성에 관한 몽상과 꿈과 오해와 추억 같은 본질적인 아련함을 내포하고 있다.
- 금자씨 -55쪽
서른을 넘긴 나는 어느 때보다도 아름답고 자율적이다. 나는 세속의 금들을 넘어서는 것에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서른이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죄가 되는가 안 되는가는 오직 자신만이 선택할 수 있고 때로 죄책감 따윈 완전히 사양할 수도 있다. -60쪽
스무 살 땐 누구나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기 식대로 살기 위해 두리번거리고 검은색 트렁크를 들고 아주 멀리 떠나기만 하면 완전히 다른 생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서른 살에는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주 먼 곳에도 같은 생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안다. 세상에 대해서도 과대망상은 없다. 세상이란 자기를 걸어볼 만큼 가치 있지도 않다. -62쪽
꽃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소녀들이 꺾어 갔지, 세월이 지나 소녀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청년들에게로 갔지, 세월이 흘러 청년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전쟁터에 가서 죽었지. 그리고 모두 꽃이 되었지.
독일 민요의 노랫말이다. 좀체 잊혀지지 않는다. -94쪽
먼 여행지에서는 늘 내 부엌과 방, 나만이 사용하는 커피잔과 냄비, 잘 드는 부엌칼과 발닦개, 나만의 거울과 내 창가의 풍경이 사무치게 그립다. 그러나 돌아와 그들을 만나면 그것들이 나를 붙들어주기에는 너무나 보잘것없다. -98쪽
애초에 용서할 수 없는 남자와 섹스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잘못된 섹스란 의외로 영혼의 그림자를 잠식하는 법이다. 아무리 의미를 두려 해도, 육체적 패배를 이겨낼 수는 없다. 그것이 만회할 기회가 없는 단말마적인 패배일 때는 더더욱. 그런 종류의 육체적 패배는 정신의 허위를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것이다. -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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