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의 신 - 행복해지기 위한 40가지 레시피
카노 유미코 지음, 임윤정 옮김 / 그책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내 맘에 쏙 들었지만, 추천하기는 좀 애매하다. 

'채소의 신'이라는 제목은 대단히 적절하다. 저자 카노 유미코는 채소교의 교주라 할 수 있겠다. 

내가 딱히 채소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좋아하기는 커녕, 귀찮아서 안 먹지만 먹어야 하는 부담스러운 거. 라고 생각하고 있고, 요리책은 수학책 읽는 것 만큼이나 '재미있게' 읽는터라 별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다. 


첫 문장부터 당근님에게 바치는 시인 것인가. 


이름도 없는 당근이 도마 위에 누워 있다.


라며. 40가지 레시피라고 했는데, 친절한 레시피는 아니다. 우리나라에 없는 재료와 음식도 나오고, 사진도 없고, 정확한 분량 같은 것도 없다. 재료를 참조할 수 있고, 저자의 말처럼 오래오래 채소를 해 먹으면서 각 채소의 최고를 뽑아내는 경험을 길러라. 뭐 이런식?


짤막짤막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물론 '채소' 관련 이야기이다. 이건 채소교 교리서니깐) 되게 자연스럽게 뜬금없이 레시피가 튀어나온다. 그 리듬이 자이로드랍 뺨치는데 40가지 이야기와 레시피를 읽어나가며 그 리듬에 익숙해진다. 


채소를 사랑하는 이야기는 그간 읽고 보았던 '채식 예찬'들이랑은 결을 달리 한다. 차라리 대체치료라던가 삶의 방식. 음식을 통한 철학.에 가까울까. 괜히 내가 채소교, 채소교 하는게 아니라니깐.


진심으로, 아마 진심인 것 같은데, 남편이 자신의 채소 요리를 안 좋아하고 고기류를 좋아해서 괴로워하다 이혼했다는 이야기라던가 죽기 전에 먹는 마지막 물같은 거. 달빛에 몇 시간 놔두고 뭐 그런거. 는 과학과 종교 사이를 오가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난 이 책을 좋아하기로 마음 먹었고, 그녀가 신봉하는 것이 과학이건, 종교건, 철학이건 나도 그거 좋다. 나는 그렇게 못 살고 있지만, 이책을 읽고, 채소를 좀 더 유심히 눈 빛내며 보게 된 것 같긴 하다. 


내가 그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 채소는 나에게 와서 당근, 청경채, 연근, 양배추, ... 되었다. 


오늘 점심은 꽃시장 다녀오면서 작업실 앞 야채가게에서 두부 한 모 천원, 청경채 천원 주고 사와서 청경채는 올리브유와 소금간에 굴소스 약간 넣어 볶았고, 두부는 생으로 청경채와 함께 먹었다. 


며칠이나 가겠나 싶지만, 맛있었고, 배부르고, 싸고, 먹고난 후의 죄책감( 배부르고, 돈 썼고, 살 쪘어) 도 전혀 없다. 늘 사먹는게 해먹는거보다 비싸다고 투덜거렸지만, 그건 내가 인스턴트,가공식품만 사서 그랬던건가. 이천원에 이렇게 맛있고 배부르게 한 끼 먹고 (청경채는 심지어 남았다!) 좋구나. 청경채 꼭지는 남겨뒀다. 내일은 양배추를 볶아 먹어야지. 두부랑. 당근을 사서 간식으로 먹고 남은 두부,당근,청경채 넣고 야채 수프를 끓여야지. 


미쳐야 미친다.는 말이 절로 떠오르는 저자다. 저자의 요리철학을 내 몸과 마음에 담아 내 꽃철학에도 끼얹어본다.  


나는 형태로 남는 것에 비용을 들이기보다는 사라지고 말더라도 가치가 느껴지는 것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일류라고 불리는 것을 체험하면 술통의 와인처럼 내 안에서 무언가가 서서히 숙성되어 가는 것 같다. 처음에는 단편적으로 느껴지다가 안에 있는 예술성을 갈고 닦으면 조각들이 하나로 모인다. 

요리는 세상에 남지 않는 예술품이라고 생각한다. 레시피를 기록하는 일은가능하지만, 요리 자체를 남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먹으면 흔적도 엇이 사라지고 마니까. 악기나 그림의 재료처럼 보관이 가능한 소리나 색이 있을리도 만무하고, 같은 재료라도 조금씩 차이가 생겨 평생 그 요리를 단 한 번밖에 만날 수 없다. 당연히 같은 이름의 요리라도 매번 미묘하게 다른맛을 낸다. 요리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는 남지 않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의외로 많다. 바위나 금속을 사용한 것은 유적으로 남지만, 이 지구에는 형태를 남기지 않은 예술이나 문명이 분명 더 많았으리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역사로 인식되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DNA에 새겨지고 후세에 전해져 지구의 기억으로써 확실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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