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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뽑기 ㅣ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셜리 잭슨 지음, 김시현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2월
평점 :
이 작가는 미치광이 아니면 천재다.라는 띠지 카피의 평은 적절하다.
하나 더 붙이면 '그녀는 펜이 아니라 빗자루로 글을 쓴다' 라는 평도 적절하다.
단편 20여개나 모여 있으니 각 단편이 짧다는 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셜리 잭슨의 중,장편에서 느꼈던 공포, 고딕의 느낌보다는 작은 마을에서의 왕따와 차별을 이야기하거나 작은 마을에서 나온 주인공이 큰 도시에서 갈 길을 잃고 헤매는 배경이다. 주인공은 가해자이기도 하고, 피해자이기도 한데, 두 경우 모두 인간의 광기 앞에 어찌할 수 없이 연약하게 나온다. 마음이 약해 끝도 없이 휘둘리는 장면들을 짤막짤막한 단편으로 읽어야 하는건 처음부터 끝까지 하이텐션을 요구하는 피곤한 독서였다.
중간에 다른 책 읽다가 다시 올 엄두가 안 나 한 번에 읽어내긴 했지만, 이 책을 더 잘 읽는 방법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셜리 잭슨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고, 교과서에도 실린 작품은 표제작인 '제비뽑기' 인데, 개인적으로는 고딕 느낌이 나는 중장편들이 더 좋다. 홀리오 코르타사르의 '드러누운 밤' 을 읽기 전에 이 단편집을 먼저 읽었다면, 나름 충격적이었을 같은데, 단편으로 인한 충격적인 느낌은 '드러누운 밤'에서 더 강했다.
'장편소설은 주요 인물을 그리고, 기초적인 구성을 짜고 나면 스토리에 큰 흐름 같은 것이 생겨서 가이드 역할을 한다. 거꾸로 단편은 스냅 사진처럼 한순간을 잘라내면 된다. 하지만 중편소설은 필요불가결한 몇몇 에피소드를 오버랩하면서 하나의 작은 세계를 제시해야 한다.' 무라카미 류의 글인데 단편을 '스냅 사진처럼 한순간을 잘라낸 것'으로 표현한 것을 떠올리며 책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