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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 아케이드 ㅣ 오가와 요코 컬렉션
오가와 요코 지음, 권영주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의상 담당, 백과사전 소녀, 토끼 부인, 고리 집, 종이상점 시스터, 손잡이 씨, 훈장 상점 미망인, 유발 레이스 ... 등의 목차 제목처럼 예쁜 이야기들이 모여 있는 단편집이다.
아케이드에 모여 있는 가게들 이야기. 관리인의 딸인 화자는 아케이드에서 아르바이트로 배달을 하고 있다. 왠지 시추일 것 같은 개 페페와 함께.
내가 가게를 했을 때 난 꽃가게 언니였고, 맞은편은 우산 아줌마였다. 전화기 총각도 있었고, 우동집 식구들도 같은 층에 있어 우린 서로를 가게 이름이나 파는 물품의 이름으로 부르곤 했었다.
큰 화재가 났지만, 어째저째 운영되고 있는 있는듯 없는듯 오래된 '아케이드'의 가게들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벌어졌던 이야기들이다. 왠지 죽어가는, 아니면, 이미 죽은 아케이드처럼 죽음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은데, 애도와 상실보다 '증발'과도 같이 다루어진다. 사람이 죽는 것은 그 사람이 이 세상에서 없어지는 것. 그렇게 다루어진다. 슬픔의 여지가 거의 없다.
각각의 가게들에 다른 가게들 이야기가 걸쳐 있는데, 레이스 가게 이야기들이 가장 인상 깊었다. '의상 담당'이 더 이상 연극 무대가 없음에도 레이스 가게에서 레이스를 사들여 의상을 만들고 있다거나 레이스 가게와 종이상점 시스터는 남매인데, 종이상점 시스터를 찾는 편지를 많이 쓸 것 같은 맘이 따뜻할 것 같은 남자의 이야기라거나, 죽은 사람의 머리카락 유품으로 레이스 작품을 만드는 유발 레이스의 이야기라거나. 이야기들은 짧고 소소한데, 슬프고 괴로운 것이 아니라 짧고 소소한 가운데서만 느낄 수 있는 증발로서의 죽음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와닿는다.
뒤로갈수록 화자의 사적 경험들이 덧붙여져 완성되기에 마지막까지 몽글몽글한 기분을 유지할 수는 없지만, 그런고로 여운또한 많이 남는 단편연작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