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녀 창비세계문학 37
쿠라하시 유미꼬 지음, 서은혜 옮김 / 창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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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었다. '뱀에게 피어싱' 같은 모던퇴폐의 느낌. 주인공인 미키를 묘사한 글을 보면서 내내 요시타카 유리코를 떠올렸다. 요즘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었는데, 중간중간 외국어가 많이 쓰인건 우리나라 근현대소설같은 옛날 느낌도 나고,  예를 들면 '그 눈은 언제나처럼 씨니시즘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명랑해 보였고.' 라던가 '대낮부터 알몸으로 자고 있었던 것인데, '작가' 말로는, 이런 일은 너무나 쉬르레알리스뜨풍인 것이다.' 와 같은. 주인공 K가 대모하던 시절이 나오니 시대 배경은 1960년대 일 것으로 짐작되었지만, 분위기가 꼭 요즘 소설 같았어서 말이다. '십대 데뷔 작가의 충격적 근친상간 소재 에로 소설!' 과 같은 카피가 붙어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시점이 미키와 K를 오가고, 시간은 그들이 처음 만났던 시간과 교통사고 난 후에 다시 만나 시간을 오간다. 이야기는 미키의 노트와 K의 노트를 오가기도 하며 시종일관 몽환적이다가 가장 몽화적이어야 할 것 같은 결말 부분에 가서 묘하게 현실적이 되면서 담담해져 그것이 외려 충격으로 다가오고, 데면데면 읽다가 똑바로 일어나 허리 펴고 앉아 다시 읽게 만든다. 

작품해설까지 읽고 나니, 쿠라하시 유미코는 오에 겐자부로와 함께 '제3신인'으로 불렸던 60년대에 데뷔한 작가였다. 

미키는 포르쉐를 트럭에 박아 함께 탔던 엄마를 죽게 만들고, 그녀 자신은 엠네지아(기억상실)로 K를 찾는다. 그에게 자신의 노트를 건네며, 이 노트의 이야기가 사실인지 봐달라고 한다. 미키의 노트에는 미키와 플레이보이 덴티스트 파파의 이야기가 나온다. 엄마의 옛애인인 파파를 열여섯 나이로 찾아가 사랑을 갈구한다. 파파가 그녀의 친아빠인지 아니인지..
K는 비자를 기다리고 있다. 비자가 나오면 미국으로 가고, 비자가 나오지 않으면..  
K 역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글을 쓴다. 그와 그의 누나 L의 이야기이다. 

리뷰 처음에 어린애가 쓴 것 같은 모던퇴폐한 분위기.라고 썼는데, 확연히 다른 것은 문장이다. '쿠라하시에게 집필의 중심은 '스타일'. 어떻게 쓰느냐, 즉 주제 보다는 글쓰기 방법에 놓여 있었다.' 라고 하는데, 문장의 스타일과 거기에 담긴 사유는 결코 가볍지 않다. 몽환적인데 묵직한 것은 익숙하지 않다. 되새겨 볼수록 좋은 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자극적일 수 있는 소재인데, 이 책에서 가장 자극적인 것은 '언어'가 아니였나 싶다. 

쿠라하시 유미꼬의 책을 더 읽고 싶다. 이런 책이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되어 있다니, 창비세계문학을 다시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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