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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 폐허를 걸으며 위안을 얻다
제프 다이어 지음, 김현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지금은 말할 가치도 없는 이유들 때문에, 나는 내가 거의 포기하고 있던 어떤 책을 쓸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디트로이트에 가서 사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그 책을 구상한 곳은 로마였다. 고대 유적지의 폐허에 대한 글이 될 참이었는데, 그 사이에 나 자신이 그만 폐허가 되고 말았다.
이 책의 제목인 '꼼짝도 하기 싫은 요가' ( 원제이기도 하다. Yoga for people who can't be bothered to do it) 도 적절치 않은 것 같고, 이 책이 여행에세이에 분류되는 것도 적절치 않은 것 같다.
초반의 대부분은 이 저자와 저자가 하는 이야기가 맘에 안 들었고, 중반의 중반까지도 계속 맘에 안 들었다. 결국, 책의 반 동안은 계속 투덜거리고 눈쌀 찌푸리며 읽은셈이다. 저자의 이야기에 감정이입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하지만, 한 번 걸려들고 나면 틀림없이 허우적거리게 된다.처음부터 돌아가 다시 읽던, 그대로 덮어두고 잠시 잊고 지내던, 이 여운은 오래갈 것 같다.
대부분의 여행에세이가 여행지를 다루고 있다면, 이 책은 여행을 하는 저자의 내면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행하는 내면. 여행을 가는 것은 여행지에서의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기도 하다. 집이 아닌 새로운 곳을 적극적으로 여행하며 그 장소만 보고 온다면, 그건 알맹이가 빠진 여행일 것이다.
장소는 계속 바뀐다. 로마였다가, 베트남이었다가, 캄보디아였다가, 인도네시아였다가, 암스테르담이었다가, 디트로이트이기도 하고, 파리이기도 하다. 흔히 하는 관광지 이야기는 거의 없고, 그 장소에서의 불편함과 약을 하고, 여자를 만나는 이야기만 온통이다.
제멋대로에 세상만사 포기한 사람 같이 구는데,( 나이트클럽과 약 이야기만 하고, 여자 생각만 하는데) 아는 것은 많고 (지식인이고,작가이고), 40대이다. 어쩌면 40대라는 나이도 중요할지 모르겠다. 인생이라는 여행을 그만큼 온 것이다. 이제 폐허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아름다운 늦여름이다. 저자는 자신의 약쟁이 생활도 (마리화나이거나 좀 더 심한 스컹크를 하는 정도라고 생각하지만) 이제 말기라고 생각한다. 지겨워졌거나, 몸 때문에라도 멈춰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가을보다는 늦여름이 어울리는 것 같다. 여름을 날때는 덥고 싫고, 덥고 좋지만, 새로운 계절이 다가온다고 생각하면, 그러니깐, 새로운 계절을 부르거나 마다할 수 없어 순응할 수 밖에 없는 거긴 하지만, 기대도 되고, 새삼 지나온 여름이 아쉽고 그런 기분인거 아닐가.
그러니 40대를 나는 늦여름이라고 하겠다.
40대는 불혹이 아니라고 다들 이야기한다. 여전히 흔들린다고. 미혹된다고. 죽을때까지 계속 그럴 것 같다고.
아마도, 흔들리고,미혹되지만, 무뎌지고, 순응하며 받아들이는 거겠지.
그것이 이 작가의 마음이 폐허가 되었던간에, 밖에서 내리는 비가 안에서도 내리던간에 그것이 질풍노도의 '방황'으로는 생각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 어렸을때 읽었으면 싫어했을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봄에 읽기에 늦여름은 머리로는 알아도 몸과 마음으로 이해하기는 힘들테니깐.
별 이야기도 아닌데, 뒤적뒤적 다시 읽어도 계속 읽힐 것 같은 책이다. 밖으로의 여행이 아니라 안으로의 여행이기 때문일까? 이 책의 분위기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저자가 좋아하는 오든의 시들이 아닌가 싶다.
오든의 시가 읽고 싶어졌고, 지금 익숙한 곳의 익숙한 내가 아니라 새로운 장소에서의 새로운 나를 여행하고 싶다. 그 곳이 어느 다른 나라가 아니라도, 침대에 누워서도 충분히 여행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꼼짝도 하지 않고 요가도 하는데, 꼼짝도 하지 않고 여행은 못할쏘냐.
읽기나 쓰기는 물론 집중력을 요구하는 그 어떤 일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끊임없이 이런저런 일에 정신이 팔렸다. 온갖 것들이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밀려들었고, 덕분에 그 어디에도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만족스럽지 않았고 아무것도 확실히 내 마음을 잡아주지 못했다. 밖에 있으면 실내로 들어가고 싶었고 실내에 있을 때는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가장 심할 때는 일단 좀 앉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가, 자리에 앉자마자 일어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고, 그래서 일어난 다음에는 다시 앉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렇게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인생을 허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