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긋는 소녀 - 샤프 오브젝트
길리언 플린 지음, 문은실 옮김 / 푸른숲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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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줘' 의 길리언 플린. 요즘 데이빗 핀처 감독의 영화가 평단과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역시 핀처 감독!'이라고 할만큼 평소 관심 있지 않았기에 영화는 재미있게 봤지만, 원작을 먼저 읽은터라 책이 더 재미있는데 싶다. 남주와 여주가 꼭 맞는 한쌍이다 싶었는데, 영화에서는 닉이 불쌍스럽고, 에이미가 너무 가증스럽게 나오는터라.  

 

닉과 에이미의 시점이 번갈아 나오면서 심리묘사가 대단하고, 등장인물에 대한 감정이입으로 점점 더 갑갑해지다 마지막에 해소되었던 것이 '나를 찾아줘'라면,

 

길리언 플린의 데뷔작인 '몸을 긋는 소녀 sharp object' 의 카밀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은 그야말로 카밀과 함께 늪속으로 첨벙첨벙 걸어들어가는 기분이다.

 

사실 '나를 찾아줘'가 워낙 세련되게 빠져서 데뷔작은 그닥 기대하지 않았었다. 그야말로 놀랍다. '나를 찾아줘'가 더 꽉 찬 여문 이야기였다면, '몸을 긋는 소녀'는 이야기가 넘쳐 흐른다. 대단히 매력적이다. 완벽한 이야기보다는 강점이 너무 강해 단점으로도 여겨지는 그런 이야기가 더욱 끌린다.

 

시카고에서 기자로 일하는 카밀은 고향에서 일어난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기사를 쓰기 위해 12년만에 고향을 찾게 된다. 완벽한 공주로 군림하는 엄마와 의붓아버지. 너무 완벽해 인간같지 않은 동생 엠마.

 

그러나 의붓동생인 엠마는 카밀이 어렸을때보다 더 비열하고, 막가는 잔인한 열세살이다. 열세살이다. 라고 쓰고 보니 정말 어린 나이인데, 읽는 동안은 카밀과 함께 뒤늦게나 그걸 깨닫는다. 카밀은 엠마가 노는 친구들의 이모뻘 되는 나이인데, 이것 역시 의식적으로 이야기해줄때만 인식하게 된다.

 

두 자매의 감정의 폭과 깊이가 너무나 강해서 그런 것 같다.

이것은 미스터리 스릴러이고 여주인공인 기자, 카밀은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이고, 누가 범인인지는 비교적 일찍부터 보이지만, 그렇다고 하면, '카밀'은 정말 역대급 하드보일드 여주인공이다. 사건 해결 부분은 애매하지만, 직싸게 고생하고 망가지는 부분에선 어느 남자 하드보일드 탐정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술에 쩔어 있고, 멘탈도 약하고, 그렇게 되게 만든 것이 가장 가까운 사람이고, 또 하나 놀라운 설정까지. 지금까지 읽고 본 책, 영화 통틀어도 다섯 손가락안에 들 것 같은 설정인데, 그 희귀한 설정이 또 되게 불쑥불쑥 작품 내내 실감나게 튀어나와서 이 소설이 더 독특하게 여겨졌던 것 같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또 있다. 마을의 유지인 그녀의 집안은 돼지 공장(?)을 운영하며 마을을 지배한다. 돼지 축사에 대한 묘사 또한 짧지만 강렬했고, 스쳐 지나가는 조연들도 생생했다. 엠마가 가지고 노는 집을 꼭 닮은 '인형의 집' 이미지도, 할머니를 닮은 엄마, 엄마를 닮아가는 딸을 보는 것도 섬뜩했다.

 

그닥 두껍지는 않지만, 이야기는 대단히 풍부하며,

시궁창을 뒹구는 카밀의 이야기가 쉬이 읽히지 않지만, 충분히 잘 읽히는 소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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