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그만두고?"
닉이 어깨를 으쓱했다.
"나 데려다 쓰겠다고 쳐들어오는 사람도 없는걸. 이 바닥에서 9년을 굴러먹었지만 <인트레피드호 연대기>에서 맡은 배역이 그나마 제일 나은 거였어. 그마저도 별로 근사한 역은 아니었지. 대갈통에 폭탄을 맞고 뒈졌으니까."
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지."
"사실 그 덕분에 정신을 차렸어."
닉은 싱크대에 쌓인 술잔들을 닦느라 바쁜 척하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 장면을 열 번이나 찍었어. 그때마다 실제로 폭탄이 터진 것처럼 뒤로 몸을 날려야 했지. 그러다 일곱 번째 찍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난 벌써 서른 살인데, 내 인생을 위해 뭘 하고 있지? 내가 나오지 않으면 보지도 않을 드라마에서 죽는 시늉이나 하고 있잖아.' 살다가 어느 때가 되면, 왜 그 짓을 하냐고 스스로에게 묻게 돼. 자네는 왜 그걸 해?"
"나?"
"그래."
"나한테 선택권이 있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모르고 살았거든"
존 스칼지의 웃기고 재미있는 이야기들도
진지하고 웃기는 이야기들도
진지하고 진지한 이야기들도
다 특유의 매력포인트와 '이 책 읽기 잘했다' 싶은 라인들을 가지고 있다.
'레드셔츠'는 위의 분류중 웃기고 재미있는 이야기라 술렁술렁 재미나게 읽고 있었는데, 위에 인용한 순간이 나왔을 때, '이래야, 내 존 스칼지지' 싶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자.
요즘 왠지 숙면을 취하고 있다. 마음은 불편해 죽겠는데 말이다. 되게 오랫동안 내 기억으로 한 5-6년 이상 쪽잠을 잤는데, 밤에도 잘 자고, 낮잠도 잘자니 잠병에 걸리기라도 한 것인가.
핀, 혹은 닉처럼 대갈통에 폭탄을 맞고 뒈지기라도 해야지, 그것도 열 번쯤. 정신을 차릴 것인가.
말로와 리처가 서로 앞발을 주고 받는 것을 보니 기분은 좋다.
레드 셔츠 마저 읽고, 오늘 작업실에서 닭도리탕 한다고 했으니 먹으러 가야지.
오늘 낮에 작업실 쥔장인 S로부터 영국에서 단톡으로 온 스코틀랜드 사진. 워크샵 갔다며
꼭꼭 씹어 이 인생 잘, 맛있게 살아야겠다고 다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