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꿈을 파는 남자
햐쿠타 나오키 지음, 김난주 옮김 / 펭귄카페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왜 샀는지 기억도 안 나는 책이다. 사 볼까 찜하는 책이 백권쯤 되면, 열권쯤 사고, 네다섯권쯤 읽는데, 딱 사고 싶은 시기에 걸리지 않았다면, 절대 안 샀을 것 같은 평범한 제목이다. 뭐 출판계에서 책 내는 얘기라고 하고. 별 기대 안 하고 읽었는데, 간만에 몰입해서 읽었다.
'우시가라와 칸지가 의자에 기대어 코딱지를 파고 있는데 책상 위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로 시작한다. 에잇, 드러워. 책의 첫문장을 소중히 여기는 나는 왜 하필 저렇게 책을 시작할까. 이 책이 코딱지에 대한 책도 아닐텐데. 아무도 안 말리나. 찜찜한 기분으로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블랙 코미디'다. 블랙에도 코미디에도 방점을 둘 수 있어 즐겁다.
목차를 출판과 관련된 모든 이들로 쓰고 모두 까는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결말은 이게 또 대단히 즐거워서 박수!
책을 안 읽는 독자를 까고, 시대를 못 따라가는 소설가를 까고, 소설을 까고, 책을 까고, 출판사를 까고, 문학잡지를 까고, 서점을 까고, 편집자를 까고, 왜 아니겠는가, 본인도 깐다. 편집장하다 한맺혀 죽은 귀신이라도 붙은냥 책 내내 모두까기를 시전하고 있다.
"그렇다고 전에는 방송 관련 일을 했던 햐쿠타 아무개처럼 날마다 전혀 다른 메뉴를 내놓는 작가도 좀 문제지. 전에 먹었던 라면이 맛있어서 다시 찾았더니, 커리 집으로 바뀌어 있는 가게에 단골이 생길리 없으니 말이야. 게다가 다음 갔을 때는 다코야키 가게로 또 바뀌어 있는 상황이니."
" 좀 모자라는거 아닙니까?"
" 뭐 곧 사라질 작가야. 아무튼 후세에 길이 남을 작가는 늘 새로운 독자를 끌어 들일 수 있는 작품을 쓰는 작가야. 어느 세대의 독자들에게 열광적인 인기를 모았다고 해야, 그 세대가 사라지면 끝이니까."
아, 블로거도 깐다.
순문학 출판사에서 오랫동안 편집장을 하다가 신생 출판사 마루에사로 옮긴 우시가와라 칸지.는 그야말로 고객을 들었다 놨다 하며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만드는 사람이다.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되게 진심으로 그럴듯해서 뭐, 괜찮은거 아니야. 생각하게 만든다. 책을 읽는 내가 이렇게 생각할 정도이니, 책 속에서 우시가와라를 상대하는 사람들은 마구 소리지르다가도 감복해서 감사합니다. 황송해하며 배꼽인사하게 되는 무시무시한 정도.
마루에사는 '조인트 프레스' 라는 이름으로 '자비출판' 비스무리한 걸 하며 성공한 출판사다.
책은 드럽게 안 팔린다. 책을 많이 읽는 일본도 그런가보고, 우리나라는 말 할 것도 없지.
굳이 '아아.. 인간들아 책 좀 사라.' 는 모출판사 대표의 절규를 떠올리지 않아도 말이다.
" 내 생각은 이래. 만약 1백 47만 엔이 아까워서 책을 내지 못하면, 나 평생 후회할 거야."
" 그건 오버지."
사사키가 말했다.
"아니, 오버가 아니야. '기회의 신은 앞머리를 잡아라'라는 말 아나? 기회의 신은 앞머리만 있고 뒷머리는 머리칼이 없어. 그러니까 일단 지나가버리고 나면 잡으려고 해도 이미 때가 늦지. 이 출판에 관해서, 나는 나 자신에게 물어봤어. 만약 실패하면 잃는 게 무언가? 하고 말이야. 결국 1백 47만 엔이라는 돈에 지나지 않아. 반대로 출판을 포기하면 남는 것은 무엇인가?"
유타로는 모두의 얼굴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그건 막대한 후회야. 나는 몇 년 세월이 흐르면 그 때 왜 출판을 감행하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할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그 후회는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커질 게 틀림없어. 난 중년이 되어서까지 그런 후회를 안고 살고 싶지 않아. 해보고 후회하는 편이 훨씬 낫지. 나이를 먹을 대로 먹어서 아, 그때가 내게는 최대의 기회였을지도 모르는데, 하는 생각하기 싫어. 고작 1백 47만 엔 때문에 그런 후회를 하고 싶지 않단 말이야. 물론 지금 내게는 큰돈이야. 그러나 20년 후의 내게도 과연 큰 돈일까? "
독자가 아니라 저자를 상대로 하다보니 고객이 줄지를 않고 늘어가기만 한다. 사기 같은데, 납득당해 버린다.
다양한 분야에 대해 칼같은 단호함으로 조목조목 이야기하는 것도 재미있고, 기승전결도 뚜렷한 기획물의 느낌이고, 결말 또한 맘에 든다.
"다시 말하는데, 우리가 하는 일은 손님들에게 꿈을 파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