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뻐?
도리스 되리 지음, 박민수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Keiner liebt mich (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 /한국제목 : 파니핑크) , Bin Ich Shoen? ( 나 이뻐?) 제목에서부터 물씬 풍기는 치명적인 외로움의 냄새.

열일곱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외로움이 그렇게 묻어나는 책이다. 한 단편에서 나왔던 조연은 다른 단편에서는 주연으로 나온다. 열일곱 단편이 모두 같은 등장인물로 엮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외로움' 이라는 끈으로 묶여 있다. '외로움'이라는 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정말 읽기 싫어하는, 보기 싫어하는 것 한두가지쯤 있다. 여러가지 터부들. 그것이 사회적 문화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것이어서일수도 있고, 단지 어떤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터부들도 있다. 아마도 독자는 자신만의 터부를 이 책에서 만날지도 모른다. 그것은 '관'일수도, ' 애완동물의 죽음' 일수도 혹은 '거세' 일수도 있다. 단 그 터부가 '외로움'이라면 '외로움' 을 읽는 것만으로 신경질을 내는 독자라면, 이 책을 읽어내기 힘들 것이다.

이미 영화에서 봤던 파니핑크, 그녀가 주인공이다. 오르페우스를 만나기도 하고, 행운의 별을 든 남자를 만나기도 한다. 속옷을 입고 거리를 걷기도 하고, 점을 보며 미래를 엿보려하기도 한다.  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그 나머지 부분들을 때로는 우나로, 때로는 엘케로, 때로는 루시의 이름으로 볼 수 있다.

'차례를 펼치니 ' 삶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장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곳을 펼친다. 미라... 당신은 죽었다. 차갑게 식은 몸엔 향료가 발라지고, 털끝 하나 보이지 않도로 온몸은 붕대로 감겨 있다. 상상해보라. 당신은 관에 뉘어 어두운 동굴로 옮겨진다. 그리고, 이제 당신은 몸을 일으켜 온몸을 감고 있는 붕대를 푼다. 하나하나, 차례차례...'

책을 읽는내내 파니핑크가 오버랩된다.

도리스 되리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소설은 '다른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한다. 그것은 '현재와 다른 삶'을 의미한다. 한 여자가 있다. 사랑에 빠졌거나, 사랑을 갈구하거나, 사랑에 버림받았다. 엄마의 모습의 그녀. 사랑했던 과거는 그녀의 과거인가 싶고, 변하고 무뎌진 자신의,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의, 그리고 그 사랑의 모습은 유통기한이 지났다. 유통기한 지난 모습으로 칭얼대는 아이들에, 더 이상 뜨겁게 사랑하지 않는 남편이란 이름의 남자에 매여 있다. 그리고 '그녀'는 달라지고 싶다.고 바란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책 속에 '감각의 제국' 이란 제목의 단편이 있다.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제국' 을 보고 쓴 글이라는데 천원 건다. 전혀 예상치 않았던 반가운 만남이다. 책의 뒷면에는 독일의 각종 매체의 선전글이 있다. 그 중에서 이 책과 가장 닮아 있는 글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짜이퉁의 글이다.

' 도리스 되리는 일상을 이야기한다. 사랑에 대해, 슬픔에 대해, 그리고 치명적일만큼 슬프고 우울하며, 환멸을 느끼게 하는 극악한 인생에 대해...'

 


댓글(3)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클리오 2005-06-14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오늘 하이드님의 글을 느낌도... --;; 다음 글을 유쾌발랄한 걸로 읽으셔요.. 물론 삶에 그런 날도 있지만... 글 참 좋아요, 잘 읽었어요...

panda78 2005-06-22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이번에 헌책방에서 이 책 샀어요. 오늘 받았는데 어떨지.. ^^;
저는 파니핑크는 그냥 그랬거든요..

하이드 2005-06-22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시면 재미없을 수도 있는데, 파니핑크랑 정말 비슷한 느낌이거든요. 독일식 고독은 뉴욕의 그것보다는 좀 많이 낯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