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루이스 세풀바다 vs 송병선
환경 그리고 민주주의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가한 칠레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를 송병선 울산대 교수가 만났다. 송병선 교수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학술진흥재단이 후원하는 ‘카리브 해의 문화 현상과 담론’ 프로젝트 연구책임자로 있다. 가르시아 마르케스, 보르헤스, 마누엘 푸익 등의 소설을 번역했으며, <보르헤스의 미로에 빠지기> 등의 저서가 있다. 송병선 교수와 세풀베다는 환경문제와 민주주의, 그리고 다원적 문화관과 지식인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관해 대담했다.
송병선 =지난 수요일에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과 다섯 명의 각료들이 환경보호단체인 그린피스가 수여하는 최초의 ‘황금사슬톱’ 수상자로 지명되었다. 당신은 그린피스의 열렬한 활동가이다. 우연치고는 묘한 우연이다.
세풀베다 = 룰라 대통령이 수상자로 결정될 것이라는 소문은 한국에 오기 전부터 무성했다. 아마존 파괴에 앞장섰기에 그런 치욕적인 수상 후보가 된 것 같다. 아마존 지역에 농업을 장려하여 개발에는 성공했지만 환경보호정책은 비효과적이었다. 아마존은 법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그곳에서의 법은 돈 많은 지주들의 말이다.
송병선 = 당신은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을 통해 아마존의 환경보호자 치코 멘데스를 기리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세풀베다 = 치코 멘데스는 아마존 정글에서 백인과 원주민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옹호했다. 그리고 다국적 기업에 대항한 아마존 주민들의 공동전선에 관해 말했다. 여기서 아마존 주민이란 아마존 정글이 제공하는 자원을 조화롭게 이용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원주민과 백인들을 일컫는다. 세계은행 본부의 연설을 통해, 그는 아마존 정글 파괴를 멈춘다는 조건으로 브라질 정부에게 차관을 제공하도록 설득했다. 나는 이 소설이 결국 아마존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켜 외지인들이 관심을 쏟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치코에게 이야기했고, 그는 그런 두려움을 떨쳐버리게 해 주었다. 그래서 이 소설을 그에게 바친 것이다.
송병선 = 이후 당신의 작품을 보면 탐정소설류가 꽤 있다. 그것은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이 즐겨 사용하는 장르이다. 왜 그런 것인가?
세풀베다 = 탐정소설이나 하드보일드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매우 중요한 장르이다. 독재시기에 겉으로는 탐정소설인 척하면서 실제로는 현실을 고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아주 교묘하게 사용할 경우 그것은 검열을 효과적으로 피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일화와 그로테스크한 장면들 속에 현실고발을 삽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작가 오스발도 소리아노의 작품을 읽은 군사정부는 비판적 의미를 포착하지 못하고 몹시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지적인 탐정소설보다는 열정과 사랑이 느껴지는 탐정소설을 좋아한다. 그래서 구조보다는 이야기에 관심을 보인다.
송병선 = 당신은 문학이란 모든 것을 포함하는 영역이라고 항상 주장한다. 문학이 민주주의 공간이라고 생각하는가?
세풀베다 = 나는 문학은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문학 속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모든 유희와 여러 생각, 그리고 여러 가치가 허용된다. 그러나 20세기에 태어난 우리는 항상 승리자가 이야기하는 단일적인 역사와 진리만을 배우기 때문에, 우리 민중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알지도 못하고 역사 속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알 수 없다. 우리는 이런 세상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공식 역사와는 다른 이야기를 써야 하고, 그것 때문에 비싼 대가를 치르기도 한다. 나는 지금의 상태에 만족한다고 말하고 싶고, 그래서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연애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고, 그렇기에 작가의 윤리적 입장이 중요한 것이다.
송병선 = 당신의 윤리는 어떤 것이고, 작품과는 어떤 관련이 있는가.
세풀베다 = 현실 속에서의 윤리는 작가의 사상이다. 윤리적 입장에서 삶을 수용하지만, 작품은 미학을 지녀야 한다. 이것들은 문학에 윤리적 입장을 투영함으로써 하나가 된다. 나는 바로 내 작품에서 이런 것을 시도한다. 나는 내 작품을 선전물로 만들고 싶지 않다. 이 두 가지를 혼동하면 사회적 리얼리즘처럼 판에 박힌 작품이 된다. 나는 윤리의 미학을 강조하는데, 그것은 바로 저항의 행위이다. 나는 페터 바이스의 <저항의 미학>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저항하는 행위 속에 바로 작가의 윤리가 있다.
송병선 = 당신의 작품에는 주변인들이 주로 등장하는데, 이들 역시 저항의 미학에서 비롯된 것인가.
세풀베다 = 잊혀진 사람들, 그 누구도 이름을 기억해주지 않을 사람들,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삶은 주변인들로 가득하다. 한국에 와서 우연히 젊은 미군들이 드나드는 술집에 간 적이 있다. 그들은 미국인들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이었다. 그 군인들은 한국을 야만적인 국가라고 여기고 있으면서, 이라크로 갈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고 있었다. 한국에 관한 책을 한 권만 읽었더라도 그런 생각을 떨쳐버렸을 텐데, 그들은 자기들이 어느 땅을 밟고 있는지, 자기 주변에 누가 있고, 자기가 어느 곳에 있는지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이런 인물들에게 관심을 보인다. 그래서 어제 오후 호텔에서 <서울 비망록>이라는 글을 썼다. 이걸 내 작품으로 구상해보고 싶다.
송병선 = 당신은 전 세계에서 많은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다. 독자들이 당신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보편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세풀베다 = 보편성은 판매 부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외국의 독자들이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아 작품의 한 대목을 인용하면 비로소 보편성을 띠게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쓸데없이 분량을 늘리려고 하지 않으며, 그것이 작가의 기본 윤리라고 여긴다. 그래서 내 문체는 직접적이며 정확한 헤밍웨이 스타일이다. “100달러짜리의 미사여구로 소설을 쓰는 것보다 50센트짜리의 단어로 훌륭한 소설을 쓰는 것이 더 가치 있다”는 헤밍웨이의 말은 나의 신조이기도 하다.
송병선 = 당신이 이끌고 있는 라틴아메리카 도서전의 주제는 최근 2년간 문화의 다양성이었다. 왜 이것을 주장하는가.
세풀베다 = 세계화는 다양성을 주장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단일성을 추구한다. 그것은 미국 일방주의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다. 지금의 지성계는 허약하기 짝이 없다. 대중매체의 영향으로 사고는 빈약하고, 자료는 많이 얻지만 정보는 없다. 그래서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고 사상이 형성되지 않는다. 그래서 권력과 연결된 조직적 지성만 있으며,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얽매인 지성만이 존재한다. 민주주의는 선거권만 주어진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교육과 독서, 다양한 대중매체와 다양한 사고가 있는 세상, 즉 다원적 세계가 민주주의다. 바로 여기서 현재의 우파와 좌파의 사상도 비판받아야 한다. 보수적 우익은 ‘보수’가 의미하는 것처럼 부동적이다. 그러자 지금의 좌파도 정체되어 있기에 역시 부동적이다. 열린 좌파만이 현세계의 대안이라고 나는 믿는다.
송병선 = 당신은 소설가라는 말 대신 연대기 작가 혹은 이야기꾼이라는 말을 선호한다. 그 이유와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지 말해 달라.
세풀베다 = 초월성에 대한 허영은 버린 지 오래다. 나는 내가 살아야만 했던 모순적인 현실을 소설 속에서 기록하고 싶다. 그런 점에서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내년 4월에 <실패의 대가>라는 탐정소설과 10월에 <행복한 시절>을 출간할 예정이다. <행복한 시절>은 6년간이나 써 왔던 작품으로 내가 속한 세대의 투쟁의 기록이다. 커다란 꿈을 가졌지만 결국은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던 이야기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세상은 바뀌었어도 우리를 바꾸지는 못했다. 정리 송병선 울산대 교수 avionsun@ulsan.ac.kr 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
 |
|
군부에 추방당한 칠레작가 자유투사이자 환경운동가자유투사이자 환경운동가, 그리고 영원한 방랑자로 알려진 루이스 세풀베다는 1949년 칠레의 오바예에서 태어났다. 1989년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을 출판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했다. 1973년 군사쿠데타가 일어나자, 체포되어 고문을 받은 후 추방되어 라틴아메리카와 유럽에서 망명 생활을 했고, 지금은 스페인의 히혼에 살고 있다. 대표작으로 <파타고니아 특급열차> <외면> <소외> <핫라인> 등이 있다.
|
|
 |
 |
문학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최고의 공간이라고 믿는 그를 믿는다. 잊혀진 사람들, 그 누구도 이름을 기억해주지 않을 사람들,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