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바로 애니메이션의 원작이 될 수 있는 책은 좀처럼 없습니다. 그런데 평생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기 어렵겠다고 생각한 작품이었는데 '지금이라면 될지도 몰라' 하는 시기가 오는 일도 있습니다. 수십 년에 한 번뿐인 바로 그 기회이지요. <마루 밑 바로우어즈>를 만들기로 결심한 것은, 이제 어른들 아니 인간들이 마치 세계에 대해 무력한, 소인 같은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20세기가 끝나갈 무렵에 저도 종말을 다룬 작품을 했습니다만, 그런 종말론이 유행한 무렵의 '종말'에는 어딘가 감미로운 느낌이 있었습니다. 거품이다 뭐다 돈 좀 벌었다며 온통 방방 떠다닐 때 '바보들, 머지않아 힘들어질 거야.' 하는 작품을 낼 때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종말'이 이처럼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규모가 되어버리면, 진절머리가 나고 맙니다. 현실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니까요.
어느새 모두가 소인이 되어버린 겁니다. 세상에 대해 무력해져서 한 푼이라도 싼 게 낫다는 둥 하찮은 문제로 우왕자왕하고 있습니다. 시야도 정말 좁아졌습니다.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게 어떤 인간으로 살 것인가 논하던 거대한 주제는 지금 건강이나 연금 이야기로 바뀌어버렸습니다. 담배를 끊어라, 대사증후군이 어떻다 하는 정말 대수롭지 않은 내용들뿐입니다.
'마루 밑 바로우어즈'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영국의 혹독한 시절을 배경으로 쓰였으므로, 물질적인 며늘 포함해 살아가는 어려움이 생생히 담겼습니다. '이대로는 애니메이션이 될수 없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는 다른 의미의 어려움이 확대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면 애니메이션이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책으로 가는 문'을 읽었다.
이 책 분명, 어디선가 인용해둔거 보고, 읽고 싶었던 책에 대한 인용이 있어서 산건데, 어떤 책이었는지 다 읽어도 절대 기억나지 않지만, 이 책 자체로 남은게 많다.
첫째로, 책이 정말 예쁘다. 짜임새가 아주 그냥 신경 잔뜩 쓴 잘 만든 책이다. '현암사'가 이렇게 책을 예쁘게 정성껏 만드는 출판사였구나. 드디어 각인되었다.
그 다음으로 느낀건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 연세에도 절대 꼰대가 아니구나. '어린이 문학'을 늘 생활에 접하고 있어서인 것일까? 얇은 책이고, 책소개도 간단간단한데, 단순한 말 속에 담긴 깊음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기억에 남은 문장은 위에 인용한 문장이다. 세계에 대한 무력한, 소인이 되어 버린 현대인. 그런 시기에 '마루 밑 바로우어즈'를 드디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수 있었다고.
인터넷 이미지로는 절대 알 수 없는 고급스러움이 이 책 표지에 있다. 엄청 비쌌을 것 같은 표지 ^^; 엄청 비싸 고급스러운데, 그게 확 안 보이고, 아주 잘 봐야 보여. 그래서 더 디자이너와 편집자의 고집이 느껴진달까.
버나드 쇼의 글을 읽으면, 지금 현재 한국의 이야기를 하는 것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그 때도,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 때도, 그리고 지금도 이렇게나 같은 느낌인건, 어리석은 역사의 반복 때문인걸까? 발전하고 퇴보하고 발전하고 퇴보하면서, 그래도 두 보 앞으로 나가고 한 보 반쯤 뒤로 오는거여서 반보쯤은 앞으로 계속 나아지는 거였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매일매일 조금씩 나아진다는건 다 뻥인가.
얼마전 본 그림 만평도 문득 떠오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