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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ㅣ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4
나쓰메 소세키 지음, 노재명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평점 :
백 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여전하다. 아니 더 심각해졌다. (7장에서 사용된 이미지를 가져와 말해보자면) 신자유주의라는 '태풍' 속에서 (인)문학이라는 '나비'가 처해 있느 상황이 어떠한지를 여기서 새삼 말할 필요가 있을까. 어쩌면 다카야나기는 (그리고 우리는) 백 년째 방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이 소설의 불행한 현재성이다.
신형철 (문학 평론가) 해설中
이 책은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선비같은 한 남자(도야 선생) 의 이야기인가, 아니면, 구애 받는 외톨이이자 방황하는 젊은이인 슈샤쿠의 이야기인가, 구애 받는 외톨이와 구애 받지 않는 외톨이의 이야기인가, 읽어 나갔다.
줄거리로 적기는 소소하지만, 마지막에는 알지도 못하는 사이, 톱니바퀴가 착착 맞물려, 차르륵, 감기게 되는 장치가 있다.
슈샤쿠에게는 다른 모두가 친구 삼고 싶어 하는 부자 친구가 있다. 부자 친구의 이야기와 가난한 문학사인 슈샤쿠의 이야기, 도야 선생의 이야기가 따로, 때론 또 같이 이어지게 된다.
길 한복판에 외톨이로 남겨졌다.
쓸쓸한 세상속을, 연못가로 내려간다. 그때 외톨이 슈샤쿠는 이런 생각을 했다.
'연애할 시간이 있으면 이 내 고통을 한 편의 창작물로 바꿔 천하에 전할 수 있을 텐데.'
올려다보니 서양 식당 2층에 아름다운 환화등이 켜져 있었다.
쓸쓸한 이야기들이 퐁당퐁당 이어지지만, 압도적인건 역시 도야 선생의 '청년에게 고함' 이라는 연설이다. 도야 선생의 입을 빌린 나쓰메 소세키의 일갈이라 하겠다. ( 일갈이란 말이 어울리기엔 소세키도 도야 선생도 아직까지 유약한 느낌이긴 하지만) 그 '고함' 이, 바로 강상중 교수가 늘상 이야기하던 근대의 나쓰메 소세키의 이야기가 현재에도 얼마나 정확한가. 보여주는 이야기. 미래를 예견하여, 한 단계, 혹은 몇 단계 위에 서 있는 위인. 이던가,
위에 인용한 신형철 평론가가 말했듯 백 년째 치유되지 못한 병을 앓고 있는 것이던가.
사실상 여러분은 이상을 갖고 있지 않아요. 집에서는 부모를 경멸하고, 학교에서는 교사를 경멸하고, 사회에 나와서는 신사를 경멸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경멸하는 것은 식견입니다. 그러나 이들을 경멸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원대한 이상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에게 아무런 이상도 없이 다른 사람을 경멸하는 것은 타락입니다. 현대의 청년은 도도하게 날로 타락하고 있습니다.
영국식을 고취하며 위세를 부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엾은 일입니다. 자신에게 이상이 없다는 것을 명백하게 폭로하고 있습니다. 일본 청년이 도도하게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 정도까지 타락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이상은 자신의 혼입니다. 내부에서 나오지 않으면 안 돼요. 노예의 두뇌에 웅대한 이상이 자리 잡을 수 없습니다. 서양의 이상에 압도되어 눈이 먼 일본인은 어떤 의미에서 모두 노예입니다. 노예로 만족할 뿐 아니라 앞다투어 노예가 되려고 하는 사람에게 어떤 이상이 발효할 수 있겠습니까?
이 전집의 만듦새가 정말 신경 쓰고, 또 써서 만든 티가 너무 나서 황송하게 읽었는데, 마지막 해설까지 화룡정점이다.
앞으로 나올 열 권의 근간도 정말 기대된다.
앞으로의 가을, 겨울, 봄, 여름, 현암사의 나쓰메 소세키 전집으로 나쓰메 소세키에 푹 젖어 지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