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지옥에 관한 보고서 열림원 이삭줍기 13
실비나 오캄포 지음, 김현균 옮김 / 열림원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책을 반정도나 읽고 나서야 그녀의 주파수에 힘겹게 '나'를 그럭저럭이나마 맞출 수 있었다. 나의 조울증과는 또다른 타입의 조울증을 앓고 있으리라 생각되는 그녀의 책은 왠지 작가가 피눈물을 혹은 검고 끈적끈적한 눈물을 질질 흘리며 무섭게 써내려갔을 것 같다. 결코 담담하지 않다.

그녀 마음 속의 폭풍을 문틈으로 살짝 엿보았을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무섭다. 희망이나 애원, 원망, 기대도 없고 자기파괴만이 있을뿐이다. 귀를 막고 소리치지만 남들은 알아듣지 못한다. 전혀. 과연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지는 모르겠지만.

열여덟개의 짧고 긴 단편들로 이루어진 오캄포의 소설은 그렇게 그렇게 전혀 이해불가에서 갑자기 찌르는듯 깊고 둔중한 공감으로 다가온다. 그렇기에 이 책 섣불리 추천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칼비노를 비롯한 많은 라틴 작가들의 존경과 칭송의 대상이 되었다. 독특한 환상문학 패러다임을 구축한 그녀의 작품들을 보고, 보르헤스는 '이해할 수 없는' 잔혹성을 오캄포 문학의 특징이라고 했으며 아르헨티나의 국가문학상 심사위원회는 그녀의 작품에 대해 '지나치게 잔인하다' 는 극단적 평을 내놓기도 했다.

그녀의 단편들이 '이해할 수 없고' '지나치게 잔인한' 것은 그녀가 파괴하는 것이 그녀가 잔혹하게 뭉게는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종종 나는 더 잔인해 보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같은 말을 막연하게 바꿔가며 반복하곤 했지.(...) 그녀의 집에서 은밀한 대화를 나누던 중에 나는 그녀의 가족들에게 그녀의 가장 내밀한 비밀을 털어놓았지. 나는 홍당무가 된 그녀의 얼굴을 비웃으며 창피를 주었어. 그런 비밀들이 벗겨지고 나니 그녀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였어. 나는 잠자코 냉정하게 그녀의 욕설을 들었고, 해명을 요구하며 내 앞으로 보낸 그녀의 편지에 답장을 하지 않았어. 나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감쌌어. 나는 아버지를 자극해 아버지의 입에서 용서하지 못할 상소리가 튀어나오게 했어. (...) 직장문제로 겪었던 우여곡절은 얘기하지 않을게. 이제 곧 당신 귀에도 소문이 들어갈 거야.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인사조차 건네지 않게 되었어. L.S. 는 나를 집에 들이는 것도 꺼려했지.

나는 사흘 동안 방에 틀어박혀 있었어. 아무도 나를 보지 못했고 나를 찾는 사람도 없었어. 마침내 해방의 순간이 찾아온 거야. 아무 죄책감 없이 목숨을 끊을 수 있었어.  - 연속中-

'속죄'에서는 너무 사랑하는 부부의 이야기가 나온다. 남자는 카나리아를 잘 다루고 소심하나 긍정적이고 무엇보다도 아내를 지극히 사랑한다. 아내도 그런 남자를 사랑한다. 그들의 이웃이 아내를 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아내도 남자도 다 눈치챌정도로 노골적이다. 남자는 그 이웃과 친해진다. 그리고 성격이 변한다. 한번 . 그리고 또 한번. 남자의 사랑의 결말은 슬프고 끔찍하다.

진한 감정의 파편들이 후드득 후드득 떨어지는 이 단편들. 그녀를 이해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둘중의 하나다. 이 책. 섣불리 추천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그래도. 혹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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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5-04-12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삽입글 읽어봤을땐 상당히 끌리는데요? 술술 읽히는 것이 번역도 깔끔하게 된것 같구..기회되면 읽어보고 싶네요. ^^ (아, 나는야 갈대.)

하이드 2005-04-12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저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