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바람난 여자
아니 프랑수아 지음, 이상해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3월
절판


어떤 표지들은 너무나 혐오스러워서 탐을 내던 책조차도 거들떠보지 않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창 독서를 하다가 책의 내용과 표지, 아니면 텍스트와 저자 사진을 대조해 보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저자의 사진 역시 내 신경을 건드린다. 이 작가는 전혀 어울리지가 않는다. 나는 수염도 없고 바싹 마른 그를 상상했다. 그런데 턱수염을 기른 데다 살이 쪄 투실투실하기까지 하다. 도도하고 투박한 여자일 거라고 믿었던 저자는 한껏 교태를 부리는 세련된 도시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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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본 닉 혼비의 '피버 피치' 자신은 써포터지 홀리건은 아니라고 하지만, 책 날개의 대머리 사진은 게다가 가죽자켓. 음. 딱 홀리건 스타일인걸. 생각이 들어버렸다. 게다가 그 책의 표지는 정말정말정말 유치찬란하기 그지 없다. 원서 페이퍼북의 깔끔한 노란 표지가 정말 아쉬운 순간이었다. 만약, 인터넷에서 사지 않았다면 절대 사지 않았을 표지중 하나다. -63쪽

나는 독실한 신자는 아니지만 신성 모독을 좋아하지 않는다. 책을 숭배하지는 않지만 이따금 신성 모독죄를 저지르는 공상을 품을 정도로 책에 대해 경외심을 갖고 있기는 하다. (...) 책 귀퉁이를 접는 것은 끔찍하게 싫어하지만 백지로 남아 있는 책 마지막 페이지에 스케치를 하는 일은 즐긴다.
옳든 그르든, 나는 이러한 자잘한 탈선들이, 소심한 여자가 용기를 내어 시도하는 나름대로 대담한 이 행동들이 더 큰 탈선, 엄청난 피해,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막아준다고 믿고 있다. 예를 들면, 책에 불을 붙이는 것 같은. (...) 반면, 나는 본문 위의 여백에 수채화를 그리라고 한다면 기꺼이 하겠다. 게다가 나는 이미 최근에 다시 읽은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에, 안드레스의 성찰이 끝나는 폴리오 판 395페이지 위에 아주 조심스럽게 그 일을 시작했다. 나는 파스텔로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그렸는데, 너무 못 그려 당분간 그 짓은 두 번 다시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아주 단단히 미쳐 정신병원에 수감되는 경우만 빼놓고. 하지만 나는 내가 미치기 훨씬 전에 그 짓을 다시 시작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수채화, 파스텔화, 데생으로 완전히 뒤덮인 책, 마치 스케치북이라도 되는 듯. 맞아, 그렇게 못 할 이유가 어디 있어? 하지만 어떤 책에다? 내가 좋아하는 책(아까워라)? 내가 좋아하지 않는 책(치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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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귀퉁이를 잘 접는다. 나중에 다시 보고 리뷰에 참조하거나 밑줄 긋고 싶은 부분들에. 그러나 읽던 부분을 표시하기 위에 접는 것은 절대로 안한다. 나의 타부라고나 할까. 가장 선호하는 책갈피는 책날개이고 물론. 그 다음은 책 끈. 이도 저도 없으면, 굴러다니는 종이를 끼워 넣게 되거나, 종이마저 안 보이면, 그냥 덮어버리고 만다. 이 책은 친절하게도 하드커버면서, 책끈도 책날개도 없다. 책의 반 이상을 읽을때까지도 나는 덮었다 폈다 어디까지 읽었나 찾았다를 되풀이 해야했다. -92-95쪽

가방에 책 여러 권을 - 나머지 소지품도 함께 - 늘 넣고 다닐 정도로 체력이 튼튼하면서도 독서광은 어떤 심리적인 허약함, 병적일 정도의 예민함을 보인다. 어쨌든 나는 그렇다. 나는 사람들이 내가 읽고 있는 책 제목을 흘낏거리는 것을 참아내질 못한다. 특히 흘낏거리는 그 눈에 " 어디 뭘 읽고 있는지 좀 볼까..."라는 참기 힘든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 있을 때는 ( 밥맛없는 현학자!). [공작의 주인](아, 동물을 좋아하시는군요!)나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넬슨 알그렌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있을 때는 그런대로 참을만하다. 하지만 퍼트리샤 콘웰의 최신작을 읽을 때는 전반적인 탐정소설, 특히 이 책을 싫어한다는 것을, 이런 책은 나이 오십이 되어서야 순전히 직업의식 때문에 읽기 시작했다는 것을(하지만 그 후로 잃어버린 시간을 따라잡느라 한동안 푹 빠져 지냈다) 무슨수로 느끼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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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적일 정도의 예민함이라. 근데, 그게 참, 꽤나 주관적이어서, 책 읽는 사람들끼리도 이해는 더 잘 하지만, 참 다들 다르다. -1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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