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메뚜기의 하루
너새네이얼 웨스트 지음, 이종인 옮김 / 마음산책 / 2002년 10월
평점 :
품절
너새네이얼 웨스트를 처음으로 접했던 미스 론리하트에 비해 이 책은 참 실마리가 없다. 책을 어떻게 읽어나가야할지 난감하다고나 할까. 읽는 내내 불행하고 꼬인 버전의 '티파티에서의 아침을'을 보는 느낌이었다.
은유로 가득차서 읽는 내내 머리가 갑갑스러웠다. 읽는 당시 너무나 감동이었던 '미스 론리하트'는 어느새 내 기억에서 사라져 있었다. 읽은지 얼마 되지도 않는데, 나의 리뷰를 다시 보니, 당시 그렇게나 재미있게 읽어놓고, 다시 떠올려 보려면 생각나는 것이 거의 없는 것은 메뚜기의 하루에서는 더 심해져서 책의 끝장을 덮을 즈음에는 주인공의 이름과 책 속의 사건들이 신속하게 기억에서 사라져가 버려서 리뷰 쓰려고 옆에 책 놓고 앉아 있는 지금 계속 책을 펼쳐 뒤적이게 된다.
미스 론리하트에서 굉장히 여러가지 주제를 중편 길이의 책에 담고 있다면, 이 책은 좀 더 긴 중편소설에 더 집약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폭력과 사랑, 야망등으로 그 주제는 집약되는데,
페이 그리너라는 팜므파탈적인 여주인공을 중심으로 그녀를 쫓아다니는 별볼일 없는. '돈이 많거나 잘생긴'이라는 그녀의 기준에 충족되지 않은 '착한' 토드와 ( 본인 입으로 착하다고는 하나, 왜 자신이 착하다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융통성이 없고 사회성이 없어서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 표현을 자학의 방법으로밖에 못하는 페이에게 분노와 수치감과 경멸을 동시에 안겨주는 호머가 있다.
페이는 헐리우드의 단역배우이다. 남는 시간에는 광대였던 아버지와 집에서 만든 광택제를 팔러 다닌다.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는 모두 현실을 연기한다. 그들이 하는 연기는 드라마틱하긴 하지만 여전히 현실을 배경으로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페이의 주위에는 페이와 비슷한 삼류인생들의 모임이다. 난장이, 건달 양아치, 닭싸움 시키는 멕시코인.
그 모두의 생활은 구질구질하지만 나름대로 생생하다. 진흙바닥에 딩구는 굵은 지렁이들처럼 끊임없이 꿈틀거린다. 아니면, 예전의 주차장이었던 공터에 잡초와 잔디가 자라 버린 곳을 세상의 중심으로 알고 끊임없이 팔딱대며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그러다가 차에 치여 혹은 발에 밟혀 죽어버리는 메뚜기와 같다고 할까?
개인으로서는 힘없고 비굴하고 수줍다가도 머리가 둘이상 셋이상 혹은 몇십, 몇백, 몇천이 늘어나기만 하면 포악해지고, 용기백배해지고, 자신만의 기준으로 정의로워지는등 미쳐돌아간다.
몇장에 걸쳐서 잔인하게도 자세하게 묘사된 닭싸움의 장면이나 시사회장에서 메뚜기떼처럼 잔뜩 몰려 이리저리 휩쓸리는 장면이나 그 아수라장에서 악마같은 아이에게 돌을 얻어맏고 아이를 죽여버리려고 하는 끈이 끊겨버린 호머의 모습이나 경찰차에 실려가면서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로 사이렌 소리를 흉내내는 토드의 모습은 자극적이지만 동시에 드라이하다. 드라마틱하지만 동시에 현실이다.
어떤 기분이 들때 이 책을 다시 잡고 읽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읽은 지금으로선 머릿속에 온통 수많은 퀘스쳔마크가 떠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