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패트리샤 콘웰 지음 / 시공사 / 1996년 1월
평점 :
품절


"나는 법학 학위를 가진 의사다. 무엇이 생명을 주고 무엇이 생명을 앗아가며, 또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살기 위한 방편이었던 경험은 어느덧 나의 스승이 되었다. 이상주의적이며 논리저깅었던 젊은 날의 내 모습은 이제 찾을 수 없다. 더러운 세파가 순진했던 내 마음을 철저히 오염시켜 버린 것이다. 생각이 있는 사람은 세상의 진부한 상투어들을 진실로 받아들일 것을 강요당할 때 절망에 빠진다. 이 세상에 정의란 없다.  로니 조 워델이 저지른 일은 그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을 것이다."

첫페이지부터 무시무시한 장면이 나오는건 이제 익숙해지겠는데, 몇 페이지 넘기기도 전에 갑자기 늙어버린 스카페타의 자조적인 모습을 보는 것은 배신감마저 느껴진다.  왜? 폭탄테러로 마크가 죽었으니깐, 그녀의 마크가 죽었으니깐.  갑자기 나오는 '마크가 죽었다'는 말은 그녀와의 거리감을 이해하게 해준다.

'흔적, 'Cruel & Unusual' 이 전의 스카페타와 그 이후의 스카페타가 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스카페타는 딱히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무언가가 변해있다.

스카페타 시리즈만은 순서대로 읽기를 권하고 싶다. 변하지 않는건 악마의 다른 모습인 것 같은 살인마들과 멈추지 않는 범죄의 고리만은 아니고,악마의 탈을 쓴 악마들과 혹은 천사의 탈을 쓴 악마들을 상대하는 '스카페타' 이고 그녀의 몇 안되는 주변 사람이다.

잔인한 살인마. 거구의 그는 사형을 앞두고 있고, 전기의자에 앉는다. 그런 그를 스카페타의 팀은 검시한다. 그 이후의 유사한 패턴의 살인들에서 '그'의 지문이 나타난다. 지문은 위조되었고, 죽은 그가 범인인지도 알 수 없다. 그리고 사형수의 지문을 가지고 있는 '그'는 거리를 활보하며 살인을 계속하고 '법'의 편에 서 있는 이들을 농락한다. 살인마. 일정한 패턴이 없는 정신병자. 진정한 악마. 담력과 두뇌를 갖춘 미모의 남자이자 가라데 유단자인 템플 브룩스 굴트. 이 다음편을 먼저 읽어버린 나는 이짐승이 앞으로 스카페타와 어떻게 악연을 만들어가는지를 알고 있는지라, 꽤나 흥미롭게 그의 등장을 읽어냈다.

'흔적'에서 스카페타는 처음으로 무수한 곤경에 처한다. 진정한 친구인 마리노 검사에게 취조를 받아야하는 일도 생기며, 기소를 당해 법정에 서기까지 한다. 그와 같은 함정은 스카페타의 가장 가까운 직원들에 의해 파졌고, '법'의 편에 서 있다고 자부하는 더러운 인간들도 한몫했다.

2편부터 세편을 내리 읽고 있는데, 이 작품이 가장 재미있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인 '검시관'을 다시 읽는다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 결벽한 일벌레 스카페타 검사는 상당히 중독성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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