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를 먹고 난 소감으로는 복잡한 말이 필요 없는 것 같아요. '맛있다' 한 마디나 다 먹고 났을 때의 표정만으로 우리 요리사는 충분히 보답 받았다고 느끼거든요. 그런데 수업을 위해서는 말이 필요하답니다."

가구야가 이렇게 길게 얘기하는 것은 처음이다. 기시베는 젓가락을 놓고 귀를 기울였다.

 

"나는 10대 때부터 요리사 수업의 길에 들어섰지만, 마지메 씨를 마나서 비로소 말의 중요성을 깨달았죠. 마지메 씨가 '기억이란 말이다' 라고 하더군요. 향이나 맛이나 소리를 계기로 오래되 기억이 깨어날 때가 있잖아요, 그건 말하자면 모호한 채 잠들어 있던 것을 언어화하는 거라고 해요."

 

가구야는 설거지 하던 손을 멈추고 말을 계속했다. "맛있는 요리를 먹었을 대 어떻게 맛을 언어화하여 기억해 둘 수 있을까. 요리사에게 중요한 능력이란 그런 거란 걸 사전 만들기에 몰두한 마지메 씨를 보고 깨달았답니다."

 

미우라 시온의 사전 편집부 이야기, <배를 엮다>는 정말 생각거리가 많은 책이었다.

'말'의 '힘'을 신봉하는 나에게, '언어화'라는 것의 중요성, '말의 중요성' 을 사전을 만드는, 말을 모으는 열정적인 사람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사전은 말의 바다를 건너는 배야."

아라키는 혼을 토로하는 심정으로 말했다.

"사람은 사전이라는 배를 타고 어두운 바다 위에 떠오르는 작은 빛을 모으지. 더 어울리는 말로 누군가에게 정확히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만약 사전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드넓고 망막한 바다를 앞에 두고 우두커니 서 있을 수밖에 없을 거야."

"바다를 건너는 데 어울리는 배를 엮다. 그런 생각을 담아 아라키 씨와 내가 이름을 지었죠. "

나사 하나 빠진 것 같이 어리버리하지만, 사전을 만드는 일에는 천재적인 재능과 습관을 가지고 있는 마지메와 요리사의 길을 걷는 가구야. 말은, 언어화는 사전을 만드는 마지메 뿐만 아니라 가구야에게도 중요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라도 다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얘기를 나누어 보았는데요, 서로 방해받고 싶지 않은 세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잘 맞지 않을까 하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

꽃도 그렇다. '예쁘다' 한마디면 다른 미사여구 없이 만족하고, 행복해하지만, '수업'을 위해서는 언어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것은 평생 '수업'이 필요하다는 전제하에서의 일이다. 요리사이건, 사전 편집자이건, 플로리스트건, 나건,당신이건, 누구라도. 결혼을 해서 평생의 짝을 만나더라도, 아이의 부모가 되더라도, '나'란 존재는 그 앞에 부모, 배우자, 딸, 형제, 자매,동료, 등등 수많은 수식어를 가지기 마련이지만, 그 어느 관계에서라도 '자기 세계'를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모호한 채 잠들어 있는 것을 '말'로 '기억'하는 것. 그것은 '수업'의 가장 중요한 부분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시기에 읽은 '갈매기'를 쓴 리처드 바크의 아들 제임스 마커스 바크의 <공부와 열정> 역시 그런 의미에서 시사점이 많은 책이다.

 

한가지 일러둘 점은, 내가 가르치고 또 함께 일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자기 공부에 수동적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대화해 본 사람들은 대개 선생님의 가르침을 기대하거나 이런저런 자격증을 딸 시간 및 금전적 여유를 원했는데, 이런 조건이 갖춰지면 자기 뜻대로 운명이 펼쳐진다고 보는 것 같았다.

 

이들은 안전하고 전형적인 안내 관광을 떠나려고 돈을 모아 놓고 정기 여객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반면 이들 주변으로 내가 탄 것과 같은 작은 돛단배가 항구로 들어왔다가 다시 떠난다. 이는 어디서도 공인받지 않은, 언제든 떠나고 싶을 때 세계를 탐사하러 나서는 배들이다.

 

이번에도 배다. 괴짜라면 괴짜인 학교에서의 부적응자였으나, 학교라는 시스템을 떠나 평생 학습과 독학, 적극적인 공부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타고난 것은 별볼일 없을 지언정, 적극적으로 학습하고, 말을 만드는 것이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낯선 것을 볼 때, 그러니깐, 낯선 꽃을 볼 때라고 해두자. 처음 보는 것이니 꽃도 스타일도 낯설다. 그럴 때, 이건 이러이러해서 예뻐요. 이건 이러이러해서 특별해요. 이건 이러이러하니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꽃일도 '언어화하기'랑 떼어 놓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을 읽고, 공부하고, 적극적으로 '언어화하기'는 아주 중요.

 

'예쁘다' 라고 말하는 것은 꽃을 사는 손님의 일이고,

그 꽃을 만들어내는 플로리스트는 자신의 꽃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어야 한다. (반성하고,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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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3-07-31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매기.가 아니라 갈매기의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