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집 앞 노점상에서 원예종으로 개량된 철쭉 종류의 작은 화분들을 팔고 있는걸 보고 가격을 묻는다.

여기 나오는 에피소드들이 다 귀엽고 사랑스러워 전문을 옮겨본다.

 

작은 것은 5천원, 조금 큰 것은 8천원 이라고 했다. 아직 꽃봉오가 벌어지지 않고 있어 정확히 어떤 꽃 모양일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대충 연분홍일 것 같아 8천원을 주고 제일 큰 화분을 골라잡았다.

 

주인은 내가 선뜻 산다고 돈을 주니까 "돈을 더 받아야 하는데 처음에 값을 싸게 잘못 불렀으니 할 수 없다"고 그냥 가지고 가라고 했다. 화분을 안고 오는데 싸게 산 것 같아 기분이 좋으면서도 왠지 주인한테 미안한 마음이 찜찜하게 남는다.

 

아파트 베란다에 화분을 갖다 놓고 물을 충분히 준 다음, 매일 아침마다 꽃봉오리가 얼마나 벌어졌나 살폈다. 이 꽃은 어떻게 꽃봉오리를 피울까?

 

지난주에 시부모님 댁에 있는 철쭉을 보니 꽃송이가 백 개는 넘게 피어 있었는데 그 색깔이 예술이었다. 흰색 바탕 꽃잎에 살구꽃 색의 무늬가 그라데이션으로 새겨진 겹꽃이다. 어머님께서 해마다 꽃이 피면 꽃송이를 세시면서 애지중지 즐기시는 철쭉이다. 올해는 140송이가 피었다고 자랑하시며 당신이 콩쿨을 해드시고 그걸 부신 물을 중 이렇게 꽃이 잘 핀다고 나름대로 비결까지 일러주신다.

 

아버님께서 몇 년 전에 트럭에 싣고 다니는 노점상에서 사 왔다고 하시는데 품종은 잘 모르겠지만, 꽃이 귀티가 나서 탐이 나는 화분이었다.

 

 

며칠 전 드디어 내가 사 온 철쭉의 꽃봉오리가 벌어지며 꽃잎이 풀려 드러나는데 보니 어머님 댁에 있는 것과 똑같은 품종이었다. 매우 기뻐 남편을 불러 보여주며 마치 자랑스러운 일을 해낸 듯 뿌듯해했다. 키가 50센티미터도 될까 말까 하는데 꽃송이가 무려 70송이는 되는 것 같았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보니 거의 모든 꽃봉오리들이 다 벌어져 살구꽃 색깔이 나는 꽃잎을 펼치고 일제히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8천원을 주고 산 화분 하나가 이리도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아직도 2주는 더 피어 있을 테고, 물만 잘 주면 해마다 또 볼텐데 그 8천원이 너무 싼 것 같아 미안하고 가슴이 아프다. 저 만큼 키우느라 수고한 농부나 그걸 떼다가 차에 싣고 다니면서 팔아준 화초장사 아저씨가 금전적으로 밑지지는 않겠지만 화초가 주는 기쁨과 행복감에 비하며 말도 안 되게 싼값에 거래된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에는 수수한 식사라도 밥 한 끼에 7,8천원은 줘야 밖에서 먹을 수 있는데 두고두고 볼 수 있는 화분 하나에 8천원이라니 갑자기 분한 생각이 다 드는 것이다. 그걸 싸게 샀다고 좋다고 들고 들어온 내 꼬락서닏 지금 생각하니 참 철없는 짓이었다.

"얼마를 더 드리면 되겠어요?"라고 당연히  물어보고 돈을 더 주었어어야 하는데..... 철쭉은 제가 어마에 팔렸는지도 모르면서 마냥 방긋거린다.

 

한 3년 전쯤인가 운전하고 길을 가다가 도로변에 있는 나무 파는 농원에서 키가 큰 자생종 철쭉을 발견했다. 흰색에 가까ㅜㄴ 창백한 분홍빛이 도는 자생철쭉의 꽃잎은 보고 도 보아도 질리지 않는 우아하고 소박한 색이다. 마치 옛날 순박하고 아리따운 산골 ㅊ녀를 연상시킬 만큼 맑고 고아하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수형이 잘 다듬어진 철쭉을 만나면 수목원 고향집정원에다 사다 심어야겠다고 맘먹고 있었는데 마침 꿈에 그리던 그 철쭉을 만난 것이다.

 

차를 세우고 값이 얼마냐고 물으니 나무 하나에 한 장만 달라고 한다. 그래서 "백만원이요?" 물으니 "아주머니 나무 사본 적 있는 사람이요? 한 장이 천만원이지 백만원이 어디 있소" 그러고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생각보다 열 배는 비싸니 두 번 다시 말도 못 붙이고 돌아와서 남편에게 그 나무를 사 달라고 졸랐다. "가서 흥정을 해보고 한 500만원만 하면 아깝지 않으니, 내 평생에 당신한테 다이아몬드 반지 한 번 받아본 적 없으니 반지 해줬다고 생각하고 그 나무를 사 달라"고 간청했다.

 

남편은 언제 지나는 길에 들러보겠다고 약속했고, 며칠 뒤에 그 나무를 보고 왔다. 개발이 되는 산에서 벌채를 했을 철쭉하나에 500만원은 너무 남겨 먹는다고 생각했는지 남편은 뜸을 들이다가 두 그루에 얼마면 사겠다고 흥정을 했단다. 업자는 절대 안 되는 가격이라고 서로 밀고 당기기를 하다가 며칠 뒤 그 농원을 가봤더니 나무가 없어져버렸다.

 

얼마에 팔렸는지는 모르지만 500만원 이상 되는 가격에 팔렸을 것이다. 아쉽고 허탈했지만 천만 원을 주고 관목을 살 수는 없는 형편이라 그냥 체념해버리기로 했다. "자생 철쭉은 산에 가서 보면 되지"라고 애써 위로하면서....

 

그래도 해마다 철쭉이 피는 계절이 돌아오면 다른 데로 팔려간 그 철쭉이 눈에 아른거린다. 균형 있게 잘 퍼진 가지들에 수백송이의 철쭉꽃을 두르고 수줍은 듯 연분홍 눈웃음을 치던 그 황홀했던 자태가 자꾸 떠오른다. 다시 한 번 남편을 졸라 구해 오라고 이번엔 으름장을 놓을까 보다.

 

그 자생 철쭉은 아닐지라도 거실 베란다에 환하게 핀 저 작은 철쭉이 들여다보면 볼수록 아름답고 매력이 있다.

'너를 보고 있는 것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만족스럽단다. 그리고 너를 키워서 나한테 오기까지 애써준 모든 손길에 감사하고 미안하단다'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혹시라도 그 화분 장사를 만나면 단돈 만 원이라도 더 줘야지 마음이 편할 것 같다. 노력도 별로 들이지 않고 떼돈을 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러 손을 거쳐 수고를 한 화분이 식사 한 끼 값도 안 되는 돈에 팔리기도 하는 세상이 참 공평치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다.

 

 

철쭉 꽃송이를 세는 마음, 다이아반지도 한 번 안 해줬으니, 대신 꿈의 철쭉 나무 한그루 사달라 조르는 마음, 감사하고, 수고하는 마음들이 참 예쁘고 사랑스럽다.

 

집에서 지하철까지 가는 길에 아마도 그렇게 농원에서 직접 가져와 노점에서 파는 곳이 두 군데 있다. 수형 예쁜 고무나무나 폴리셔스 등을 보곤 했는데, 앞으로는 그동안은 관심 없었던 철쭉 화분도 눈여겨 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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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상이 책같지는 않지
    from 책과 고양이와 이대호 2013-06-24 17:17 
    오늘 노점에서 트럭으로 화초파시는 분께 가격 물었더니, 농장 가격까지는 아니라도 시장 가격 정도는 될 줄 알았는데, 동네꽃집 가격이다. 헐; 월세도 안 내면서. 월세도 안 내면서. 농장도, 시장도 다 월세도 내고, 관리비도 내고, 세금도 내고 그러는데.. 포장마차가 전혀 싸지 않다는 걸 발견하고 놀랐던 어렸던 날이 생각나는 오후. 오돌뼈 주먹밥 먹고 싶다. .. 응?
 
 
하이드 2013-06-23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난 사람들이 왜 이렇게 비싸요? 그러면, 그냥 '네, 비싸요' 그런다.

2013-06-23 15:2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