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매일 밤 8시에 만났다. 비가 오는 날에도 눈이 오는 날에도, 달이 뜬 밤에도 뜨지 않는 밤에도. 이것은 요즈음 시작된 일이 아니다. 지난해에도 그랬고, 그 지난해에도, 또 그 지지난해에도 그랬다.
*처음부터 호기심을 마구 자극하는 흡입력 강한 문장이다. '흡입력' 은 코넬 울리치문장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닌가 싶다 -11쪽
"그야 그렇겠지. 나는 사랑의 조종법을 알고 있으니까. 난 남자 같은 사랑을 하고 있는 거야. 가끔 한잔 마시는 수도 있지만, 그것이 나의 몸 속까지 스며들지는 못해. 나라는 여자에겐 방수장치가 되어 있으니까. 그러니까 다음날 아침이 되면 싹 잊어버리고 본디의 래스티로 돌아갈 수 있는 거야. 그러나 너는 여자의 사랑을 하니까 금방 빠져서 다시는 헤어나지 못하게 된단 말이야."
* 나도 어서 여자의 사랑을 해야할텐데.. -133쪽
그들은 시계 둘레에 꿀벌처럼 모여서서 각자 자기 상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룻 밤의 상대이든가, 매일 밤 같이 지낼 상대를. 여자를 기다리는 남자들, 남자를 기다리는 여자들. 거의 다 젊었다. 그 중에는 조금 나이 많은 사람도 몇몇 섞여 있었으나 대부분이 젊음에 빛나고 있었다. 밤 8시에 약속하고 시계 옆에서 기다릴 수 있는 것도 젊기 때문이다. 나이를 더 먹으면 그런 일은 외로워서 못하게 된다. 그러나 젊었을 때는 하루하루의 밤이 마치 크리스마스 이브와 같다. 금방이라도 풀어볼 수 있는 큰 선물이 당신 옆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비록 풀어봐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더라도 조금도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내일 밤도 또 크리스마스 이브이고, 금방이라도 풀어볼 수 있는 다른 선물이 당신 곁으로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 선물이 오지 않게 되고 크리스마스트리의 불이 꺼졌을 때 당신은 갑자기 나이먹은 것을 느끼게 된다. -164쪽
상쾌한 가솔린 불꽃 같은 파란빛을 녹인 듯한 하늘에 은빛 반점이 하나 - 탄호이저가 노래한 저녁의 샛별이 돋보였다. 그 빛은 아직 마르지 않은 수채화의 그림물감처럼 하늘을 뚫고 지구로 흘러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 밑에 마치 하늘의 빛을 비친 듯이 빛나는 도로가 곧장 뻗어 있고, 그 위로 그녀의 소형 로드스타가 달려갔다. (중략) 그 로드스타는 어떤 형사라도 따라가지 못하리라. 그것을 운전하는 여자는 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에는 날개가 있다. 속도계 따위를 읽을 필요가 없다. 콘크리트의 탄도를 날아가는 총알처럼 하늘을 향해, 하늘로 통하는 다리를 향해, 아니, 덧없이 즐거운 랑데부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흐카프가 우승기처럼 발람에 펄력였다. 머리칼 역시 어깨에 늘어져 있던 부분이 뒤로 날아갔다. 그녀는 마치 현대의 발키리처럼 칠흑같은 어둠 속을 지구의 둥근 표면을 따라서 날아갔다. -207쪽
그녀의 다리는 그때까지 그곳에 조용히, 그리고 얌전하게 버티고 서 있다. 금빛으로 빛나는 보도에 뿌리를 내린 듯이. 그리고 그 앞을 무수한 다리들이 행렬을 이루고 발을 질질 끌며 계속 지나간다. 끝없이, 끊임없이, 뒤꿈치를 대고, 이름도 없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다리이다. 그것은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너무도 많은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터벅터벅 걸어가는 실의에 찬 다리. 생기있고 가쁜한 다리. 성급하게 길을 서두르는 불안한 다리. 거의 일할 생각이 없는 늘쩡늘쩡한 다리. 사나이의 멋없고 투박한 다리. 발 끝에만 지탱하고 있는 애처롭게 활과 같은 선을 그린 여자의 다리. 다리, 다리, 다리.... 그 다리의 난무는 보도 표면의 한 조각이 모습을 드러내어 그것을 중단하는 일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3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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