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으니 할 수 없지."


이 한 마디는 세이지가 마치 <무쿠비토>를 애독하고 있다가 그 대사를 빌려 쓴 것처럼 완벽하게 일치했다. 결국 '그때 당신이 이렇게 말했잖아.' 하고 따져 봤자 약속이나 맹세 같은 것에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아도 될 관계라는 소리를 암암리에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어' 란 연애의 본질이기도 하다고 다마키는 생각했다. 연애는 시간의 흐름을 견디지 못하고 은밀하게 변질되어 간다. 부패해 간다고 표현해도 괜찮을 것이다. 가스가 차서 한꺼번에 폭발한다.

 

폭발한 뒤에는 두 사람 다 제각각 내동댕이쳐져 주위를 둘러보면 눈앞에 낯설고 거친 들판이 펼쳐진다.

 

 

 겨울같은 연애소설이다. 연애말살 소설이라고도 한다.

 나의 연애는 늘 겨울에 시작하곤 했다.

 

 요즘 날씨가 미쳐서 여름 같은 날씨 하루 이후 다시 겨울같은 날씨가 되어서는 아니고,

 이 책을 읽으니, 3월 봄날씨는 아니지만, 이 봄에 마음이 '겨울' 같아져, 과거의 연애들이 주렁주렁 떠오른다.

 

 

저도 남자지만 남자가 너무 지질하죠. 라고 하셨지만,

나는 아니요. 외려 너무나 감정 이입. 세이지에게도 다마키에게도.

 

세이지였다가 다마키였다가.

미도리카와 미키였다가 ㅇ코였다가

 

기리노 나쓰오를 읽어 왔다면, 역자후기까지 연이어 읽고 나면, 소름 돋을지도 몰라.

소름은 보너스. 과거 연애의 기억들은 메인, 소설과 현실, 글쟁이들의 초감각은 독자 각각에 따라 역시 메인.

 

소설의 힘을 믿습니까?

 

네,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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