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수
성문 앞 샘물 곁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 아래서
수많은 단꿈을 꾸었네.
보리수 껍질에다
사랑의 말 새겨넣고 :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그곳을 찾았네.
나 오늘 이 깊은 밤에도
그곳을 지나지 않을 수 없었네.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두 눈을 꼭 감아버렸네.
Der Lindenbaum
An Brunnen vor dem Tore
Da steht ein Lindenbaum :
Ich traeumt in seinen Schatten
So manchen suessen Traum.
Ich schnitt in seine Rinde
So manches liebe Wort;
Es zog in Freud und Leide
Zu ihm mich immerfort.
Ich must auch heute wandern
Vorbei in tiefer Nacht,
Da hab ich noch im Dunkel
Die Augen zugemacht.
뮐러는 바트 조덴-알렌도르프의 성문 앞에 서 있는 한 보리수로부터 이 시의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 성문은 오늘날은 사라지고 단지 도로명으로만 존재한다. 보리수나무 역시 1912년에 벼락을 맞아 죽고, 2년 뒤에 같은 자리에 다른 보리수나무가 심겨져 지금은 그나무가 무성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반면에 샘물은 뮐러의 시절과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사랑의 추억이 가득한 보리수 나무 옆을 사랑을 떠나며 이제 다시 지나야 하는 나그네는 캄캄한 어둠 속에 보리수 나무의 자태를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눈을 꼭 감아버린다.
뮐러의 ‘겨울 나그네’ 연작시집을 읽는 것은 요즘 나의 가장 큰 기쁨중 하나이다.
뮐러의 ‘겨울 나그네’와 슈베르트의 ‘ 겨울 나그네’를 떼어 놓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나 역시 대학때 전공했던 독일어를 가물가물하나마 떠올리며, 원문을 읽으며 시인의 마음을 곱씹고 있다.‘겨울 나그네’는 연작시로 여자가 돈많은 부자에게 시집가면서 사랑에 배신당하고 방랑하는 남자라는 스토리가 있어서 내용이 더 알기 쉽게 와닿는다. 이 겨울, 슈베르트의 격정적이면서 겨울바람과 같은 음악과 한스 호터의 절제된 목소리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오감이 다 ‘겨울 나그네’로 폭 빠진 느낌이다.
하나 더, 학교다닐때 ‘우토피스트’ 라는 원어연극 학회를 했었다. 독일어는 지지리도 공부 안하고, 독일 선생님과 졸업할 때까지 영어로 얘기한 유일한 학생이라는 전설을 남긴 내가 어떻게 독일어 원어 연극 학회에 들게 되었는지.
더구나 베어톨트 브레히트의 음악극’ Der yasager und der Neinsager’( yesman and noman) 에서 주인공의 역할까지 맡아서, 음치임에도 불구하고, 독일어 노래와 때로는 한페이지가 넘어가는 긴 대사를 외웠었다. 서울대 작곡과 언니가 음악을 작곡해 주고, 당시 고대를 다니며 연극 연출을 공부하던 언니가 연출을 해주고, 서울대 성악과 언니가 독일어 노래 부르는 법을 가르쳐줬었다.
대학 생활 통털어서 기억에 남는 얼마 안되는 부분 중 하나이다.
졸업한지 어언 4년, 독일어를 보니( 내 인생에 독일어를 본 적은 그나마 대학때가 유일하다. ) 다시 그 때 생각이 난다. 심지어 요즘 난 길거리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