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도 나는 책을 열두상자나 치워버렸다. 책의 더미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서다. 책을 좋아하는 친구나 도서관으로 보냈다. 일상적인 내 삶이 성에 차지 않거나 다시 시작하고 싶을때 나는 내가 가진 소유물들을 미련없이 정리 정돈한다. 소유물이래야 주로 책이므로, 그 책을 치워버리고 나면 개운하고 홀가분해서 내 삶에 새로운 탄력과 생기가 솟는다. 산에 들어와 살면서 이런 짓을 나는 수없이 되풀이 하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내 둘레는 온통 서책 더미로 울타리를 이루었을 것이고, 내 정신공간 또한 형편없이 옹색해졌을 것이다. '

지난주부터 매일매일 병원으로 퇴근한다. 아버지는 내가 철들때부터 내 기억에는 항상 법정 스님의 책을 읽으셨다. 이 책 ' 버리고 떠나기' 도 아빠와 따로 살게 된 후 아주 오랜만에 보는 책이다. 여러번 반복해서 줄치고, 형광펜으로 하이라이트 하시며 읽으신 흔적을 볼 수 있었다. 그 중에서 펴져있던 부분이 ' 나의 휴식시간' 그리고 위의 글이었다.

어렸을적에는 법정스님의 책들을 무조건 기피했다. 아빠가 좋아했기 때문이고, 지금도 그렇지만 물욕으로 가득찬 연약한 존재인 '나' 란 인간과 영 맞지 않는 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연히 읽게 된 위의 문구는 나의 우스운 사람 보는 기준에 의해 ( 책 많이 읽는 사람 = 좋은 사람) 법정 스님에 대해 다시 보게 한다.

십여년이 넘게 항상 곁에 있었던 책인데, 넘겨 보는 것은 처음이다.

위의 글에 이어서 법정스님은 학교 다니다가 절에 들어갈때 가장 힘든일이 ' 책들과의 이별' 이었다고 한다. ( 호감도 상승) 고르고 골라 세 권을 들고 올라갔다고 한다. 나중에는 그것도 시들해지더라고 한다. 어떤 경지인지 절에 올라가보지 않은 나로서는 알기 힘들지만, 그 경지는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안톤 체홉의 단편집중 '내기' 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한 젊은 변호사가 백만장자 은행가와 내기를 하고 십오년동안 감금된다. 십오년동안 있으면 이백만루블을 받는거고 그 전에 못 참고 나오면 은행가가 이기는거다.  십오년동안 온갖 책들을 섭렵한 그 변호사는 깨달은 바가 있어 십오년을 채우는 몇시간을 남겨두고 나오게 된다. 

'그대들의 책은 나에게 지혜를 가져다 주었다. 지칠 줄 모르는 인간의 사고 능력으로 몇 세기에 걸쳐 이룩해 낸 모든 것들이 나의 두개골 속에서 작은 언덕으로 쌓였다. 내가 그대들 누구보다도 현명하다는 것을 나는 안다. 또한 나는 그대들의 모든 책을 경멸한다. 이 세상의 모든 행복과 지혜를 경멸한다. 그 모두가 시시하고 무상하며 신기루처럼 공허하고 기만적인 것이다..'

뭐, 난 어떻든 책을 버릴 수도 기증할 수도 주기도 힘든 인간이다. 팔아서 다른 책 사면 몰라도. ^^;;

법정 스님의 책 뒤적거리다 본 좋은 말

괴테의 '파우스트' 에서 메피스토 펠레스가 하는 얘기인데

' 모든 이론은 회색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생명의 나무는 푸르다. '

대학 4년동안 멀리하던 괴테의 '파우스트' 를 슬쩍 보관함에 넣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