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에서 해럴드는 전투와 경쟁과 집단과 영광이 한데 어우러진 세상을 발견했다. 자기가 사는 세상과 달리 그 세상에서는 용기가 가장 고귀한 덕목이었다. 전사의 분노가 역사를 움직였으며, 사람들은 저마다 원색의 생생한 삶을 살았다.

 

 

 

 

 

 

 

 

 

 

 

 

 

 

 

 

월말과 월초에 난리 블루스를 겪으면서, 연락했던 몇몇 중에 하나인 대기업삼숑에 다니는 친구 하나.

 

다른 사람의 인생에 왈가왈부할 주제도 깜냥도 안 되지만, 안타깝다. (물론, 그 쪽에선 내가 안타까울수도)

 

소설보다 더 재미나게 읽고 있는 데이비드 브룩스 <소셜 애니멀> (읽다보니 '소셜'이 아니라 '애니멀'에 방점!)

저자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도 와닿고, 미국적 긍정도 넘쳐나지만, 문장들이, 비유와 은유와 예시들이 꽤 재미있어서, 생각이 여러갈래로 뻗어나가게 된다.

 

며칠전 이야기했던 롭과 줄리아의 아들 해럴드가 태어나서 겪게 되는 '관계' 가 나온 챕터는 계속 엄마미소 지으면서, 엄마와 밀당하는 아기 해럴드 이야기를 읽었고, 아, 흥미진진.

 

그 아기 해럴드가 아이가 되고, 청소년기를 겪게 되는 부분을 읽고 있다.

 

그러다 눈에 턱 걸린 문장이

 

영어 선생님인 테일러 선생님이 건네준 <고대 그리스인의 생각과 힘> 을 읽고 해럴드가 느끼게 되는 쇼크.를 이야기하는 부분 중에 '사람들은 저마다 원색의 삶을 살았다' 눈에 턱, 행간에 턱, 페이지에 턱, 걸려서, 책끈을 끼우고, '페이퍼 쓰기' 클릭 -

 

나는 꽤나 원색의 삶을 살고 있을꺼다. 일단 일하는 공간 부터가 원색이잖아.

우여곡절도 그닥 없었던 것 같다.

 

누구나 다 원색의 삶을 꿈꾸고, 그런 삶을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돈버는 기계, 양육하는 기계, 일하는 기계.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삶은 예술', 일상 예술. 과 같은 컨셉에 늘 끌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살고 싶은 색의 삶은 물과 풀의 색이다.

자연스럽게, 어디에나 어울리게, 소소한 기쁨과 위안을 주는 그런 색의 삶.

물과 풀에는 수천수만가지 색이 있으니, 그만으로도 충분히 원색의 삶인 것이 아닐까.

 

지금은 삐걱거리지만, 늪과 진흙탕과 뻘을 헤치며 발걸음을 한발짝, 한발짝 옮기고 있지만,

언젠가, 곧, 조만간, 근미래에는 봄바람처럼 가벼운 물과 풀과 같은 (이왕이면 따뜻한 봄볕에 반짝반짝 빛났으면 좋겠고)

그런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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