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은 요리사다. 한 번 밖에 안 먹어봤지만 (그리고 그건 별로였지만) 여튼, 이름 난걸 보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요리꾼임에 분명하다. (먹는 것은 시간 보내는 것.이나 때우는 것. 인 나의 미각은 그닥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근데, 글도 이렇게 잘 쓰는 걸 보면,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이건 좀 불공평하지 않은가?
라고 쓰면서 생각해보니, 레슬링 선수인 존 어빙이나, 아마추어긴 하지만, 마라토너인 하루키가 퍼뜩 떠올랐다.
존 어빙과 하루키는 멀고, 박찬일은 가깝다. (지금 내 무릎 위에 있다.)
"친구들은 이탈리아의 상세한 안내를 원한다. 내 머리통을 열면 <론리 플래닛>이나 <세계를 간다>보다 좋은 정보가 줄줄 흘러나올 걸로 생각한다. 내가 거기 살았다는 것이 이유다. 그건, 좀 멍청한 예단이다. 나는 이탈리아에서 학생이나 노동자로 살았으니 관광지에 대해 알 턱이 없다.
생각해보라. 서울에서 노동자로 사는 파키스탄 출신 모하메드 씨에게, 그의 고국 친구가 7박 8일짜리 한국 여행 코스를 짜보라고 하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고백건데 나는 바티칸도 가보지 않았다. 당연히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을 보지 못했다. 우피치 미술관도 제대로 구경해보지 못했다.
아니 어떻게 <최후의 심판>을 보지 못했다는 거야? 그러나 나를 비난해서는 곤란하다. 모하메드 씨가 중앙박물관이나 불국사를 가볼 일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멱살 잡고 "왜 아직도 국보 제8호 성주사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를 보지 못했소!" 하고 항의한다는게 말이나 되느냐. "
로 시작해서 한 문단 문단마다, 한 문장 건너 계속 웃겨주신다.
한번 썩소각도로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올 줄을 모른다.
박찬일의 책을 두 권 읽었는데, 그 때 읽었던 고생하는 요리사 이야기도 재미나긴 하지만,
뭐랄까, 책상머리에 앉아 있을 때보다 몸으로 뛰는 지금 더 와닿는건가 싶기도 하고, 요리 외의 이야기들이 박찬일의 청산유수 말발로 리드미컬하게 이어져 주시니, 이 추운 겨울밤 따뜻한 골방에 이불 뒤집어 쓰고, 고양이 발배게 해 준 채 따뜻한 홍시 쥬스 마시면서 읽을 법...하지만,
난 지금 샵 'ㅅ' ..이라는 것이 방점은 절대 아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