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의 무희.천 마리 학.호수 을유세계문학전집 39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신인섭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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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바타 야스나리와 모딜리아니 표지라 ...  

설국, 손바닥 소설 이후 읽게 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중단편집이다.
초기 대표작인 '이즈의 무희'를 비롯해서, 각각 의미 있는 중편 모음집이라 하겠다.

이번에 느낀건데,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이야기는 굉장히 감각적이다. '호수' 같은 작품을 읽다보면, 주인공 긴페이의 환각은 저자의 '공감각' 능력을 보여주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즈의 무희' 를 읽다보면, 작품속으로 빨려들어가게 되는 신호랄까, 소리와 촉감 등이 강하게 느껴진다. 특별히 정독하는 스타일 아닌데도 이 책을 읽다보면 오감이 예민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버린다.  

'이즈의 무희' 는 성장소설, 여행소설, 신분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 청춘의 로맨스 ..
이즈에서 온 무희를 따라 다니다 헤어지는 스무살, 학생의 이야기이다.  

무희에 마음이 설레어 그들이 올법한 숙소에 묶게 되는 '나'는 쏟아지는 비에 '가무단'이 오지 않겠지. 생각하면서도 기대를 접지 못한다.  

둥둥 두둥둥, 거센 빗소리를 뚫고 멀리에서 북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나는 부서뜨릴 기세로 덧문을 열고 몸을 내밀었다. 북소리가 가까워져 오는 듯했다. 비바람이 내 머리를 때렸다. 나는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면서 북소리가 어디를 어떻게 걸어서 이쪽으로 오는지를 알려고 했다. 좀 지나자 샤미센 소리가 들렸다. 여자의 긴 외침 소리가 들렸다.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비로소 가무단 일행이 여인숙가 마주한 음식점의 술자리에 불려 간 것을 알았다. (...) 나는 신경을 곤두세우며 문을 열어 둔 채 계속해서 그대로 앉아 있었다. 북소리가 들릴 때마다 가슴이 환희 밝아졌다.  

이 장면 뒤로 계속해서 묘사되는 '나'의 어지러운 마음과 계속해서 들려오는 소리와 침묵의 이야기는 굉장히 매혹적이다.
이런식의 묘사들.  

세 작품 다 독특하고, 아름다운 가와바타 야스나리 특유의 '일본의 미의식' 을 보여주는 감각적인 묘사들을 읽을 수 있으나, '이즈의 무희' 가 가장 맘에 울리는 작품이었다.  

'천 마리 학'의 천 마리 학은 중매녀가 들고 있던 '천 마리 학 무늬의 보자기' 에서 온 '천 마리 학'이다. 중매녀와는 별개로 바람기 많았던 아버지의 옛 연인인 다도 선생, 죽기전까지 아버지의 연인이었던 여자, 그녀의 딸, 그리고 '나' 가 얽힌 한 남자와 죽은 남자(아버지), 그리고 세 여자, 혹은 네 여자의 이야기. 다도 이야기, 다기 이야기, 그와 어울리는 일본적인 풍경 이야기들을 배경으로 얽히고 얽힌 남녀의 정사가 이야기되고 있다.  

'호수'는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는 작품이라고 하는데, 불쾌한건 확실하다. 여자를 뒤쫓아가는 주인공 긴페이 모모야. 말도 정말 밉살맞게 한다. 작품 속의 누군가의 대사가 이렇게 밉살맞고, 비호감으로 여겨진건 정말 오래간만일정도로 순수하게 밉고 싫다. 그가 겪는 환상, 그의 못생긴 원숭이 발, 이렇게 저렇게 연결되는 남자, 여자  

다시 읽으면 좀 다른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다자이 오사무나 종종 읽었지, 일본 소설이라곤 일본 미스터리나 하루키나 주구장창 읽던 중에 오래간만에 잡은 고전이다.
좋았다. 읽기를 잘했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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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1-03-03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참 궁금했는데 하이드님 리뷰를 읽으니 또 주문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즈의 무희>는 예전 우리 어머니 연배들이 돌려 읽고 그랬다는 얘기를 읽은 기억이 나서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만 했던것도 같고 읽었던 것도 같고 가물가물하네요. 다시 한번 제대로 읽어보고 싶어져요.

하이드 2011-03-07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즈의 무희>는 의외로 읽은 사람들이 주변에 많더라구요.
여튼, 이런 책은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