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카모토의 자서전을 읽기 시작할 때는 아무 느낌 없었다.
그의 음반 몇 개를 가지고 있고, 그 음반 중 1996 음반에는 개인적으로 특별한 소회를 지니고 있긴 하지만, 그게 다였다.
천재라고 하던데, 천재 맞다.
괴짜라고 하는데, 괴짜 맞다.
'너무' 잘났는데, 그걸 자신이 '너무' 잘 안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의 살아있는 좋은 본보기가 아닌가 싶다.
집안 좋아, 돈 많아, 부모의 서포트, 재능 넘쳐, 천재야, 시대 잘 타고나, 운도 좋아 (세계적으로 성공한 1인자격의 사람들이 운만으로 그 자리에 올라간 건 아니지만, 운은 필수 조건이기도 하다)
남들은 하나도 가지기 힘든 것을 모두 다 갖추고, 그는 월드 페이머스 류이치 사카모토.인 것이다.
대신 성격은 좀 지랄맞아도 됨.
읽으면서 겹쳐서 생각난 또 다른 천재.는 기타노 다케시였다. (천재여서인지 괴짜여서인지(괴짜라고 쓰고 싸가지라고 읽..))



기타노 다케시의 책을 처음 읽을 때, 아.. 이래도 되는건가? 그의 모든 생각에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충 속 시원하긴 한데, 정치적 올바름 따위는 개나 줘라.는 이 미워할 수 없는 사내다움.
물론 그가 천재, (그 역시 아웃라이어다. 시대를 잘 타고난 천재) 이기에 돋보이지, 찐따인데 사내다움만 내세우면, 그건 그냥 찐따겠고.
다시 류이치 사카모토로 돌아가서
맨 위의 라이브에서 사카모토가 연주하는 것은 'rain' 으로 영화 <마지막 황제>에 나왔던 곡이다.
사카모토의 자서전에는 그가 베르톨로치 감독과 작업하며 영화음악을 만드는 이야기가 꽤 길게 나온다. 그도 그럴것이,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인 아마카스 대위역을 맡아 연기로 인연을 맺었다가 어느날 갑자기 '사카모토, 영화 음악을 만들어봐' 하게 된 것. 일주일 안에 만들라는 걸 (헐;;) 이주로 네고하여 밤낮으로 작업하여 만든 것이 그 해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OST 인 것이다.
천재는 천재. 이주만에 뚝딱 전체 영화음악을 만들어내다니. 이 비슷한 사카모토의 천재성을 드러내는 에피소드들이 많이 나온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인 레인이 만들어져 처음 선보일 때의 이야기가 나와 있다.
'푸이의 두 번째 왕비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뛰쳐나가는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나는 그 장면도 좋고 그 여배우도 무척 좋았는데, 그 부분의 음악을 처음 들려주었을 때, 다들 "벨리씨모bellissimo!벨리씨모!"라고 환성을 지르며 서로 끌어안고 춤이라도 출 것처럼 크게 기뻐해주었다. 깜짝 놀라긴 했지만 그 순간의 일체감은 잊을 수가 없다. 아아, 이게 이탈리아 사람과 작업하는 기쁨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아주 어릴적부터 뭔가 멋대로이고, 반항적인 사카모토. 그의 음악활동은 현재진행형이다. 그가 이루어낸 것은 한 사람이 이루어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서전이 완결성을 지니고 있는듯한 느낌이 드는건,
후반부에 나오는 사카모토의 오랜 뉴욕생활, 그 중에 겪게 되는 9.11 사태, 그리고 이라크 전쟁,
환경운동에 눈 뜨게 되는 등의 이야기 때문일꺼다.
괴짜에 지멋대로였던 음악 천재가 자신의 영향력을 최소한이나마 이용해서 세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 는 느낌.
여전히 그는 나서는 것을 싫어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거나 이끈다거나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그거대로 사카모토 다운 느낌.
음악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면, 정말 잔뜩 재미나게 읽겠구나 싶지만,
사카모토의 음반 몇 개 가지고 있을 뿐인 나에게도 기대 이상으로 재미난 자서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