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유가 뭘까?'  
자주 이런 생각이 든다.
'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요즘 들어 이런 생각도 자주 든다.

그런데 오늘 아침 적당한 답이 떠올랐다.
왜 살아가는 것일까. 그것은
'무엇인가를 시도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의외로 사람은 스스로 책임을 완수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부분이 회사나 상사 탓으로 돌린다.
그러나 죽음을 맞이할 때에는 다른 누구의 탓으로 돌릴 수 없고 자신의 인생을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왜 사는 것일까.
회사에 입사하여 원하지 않는 부서에 배치되었다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다고 불평하기 전에
스스로를 돌이켜 보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판단하고 시도하는 것'이 보람 있는 인생이라는 느낌이 든다.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할 수 있다면 회사나 조직은 '그 일을 실현하기 위해 이용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사람이 만들어 놓은 '회사'라는 구조 안에서 자신이 시도해 보고 싶은 일을 발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쨌든 '자신의 인생을 아무런 의미 없이 조직 안에 맡겨 버리는 것'처럼 '시시한'인생은 없다.

어떤 사람이건 다른 사람들 덕분에 살아간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다른 사람을 위해 산다'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다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다.
지금까지 다양한 일들을 시도해 왔다.
앞으로도 다양한 일들을 시도할 생각이다.
중요한 사실은 '자신의 귀중한 인생을 활용하여 새로운 일을 시도하면서 살아가라'는 점이다.
오늘 아침에 깨달은 사실이다.

'시도 당하는' 것을 '시도해 보는' 것으로 표현해도 좋을 것 같다.  

 







나가오카 겐메이 <디자이너 생각위를 걷다> 中

 

사는 이유가 뭘까?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것.
자신의 귀중한 인생을 활용하여.  

꿈, 목표를 명확히 알고, 
끊임없이 업데이트 하며, 
꿈 꾸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은 것.  

새로운 시도는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만큼 거창한 일일 수도 있고,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매일매일의 소소한 (그러나 새로운) 시도일 수도 있을 것이다.  

타성에 빠지지 않고,
일상에 함몰되지 않고,
계속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은
꽤나 치열한 일이다.  

그 치열한 일에 관성을 붙일 것.
새로운 시도를 일상(습관)으로 만들어 보기.

내 인생이 '귀중한 인생' 인 것을 인지하기.  

* 위의 인용 중 마지막 문장 : '시도 당하는 것'을 '시도하는 것'으로 표현해도 좋을 것 같다.
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누가 해석좀.. (한국말 해석을 부탁하고 있다. ㅡ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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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high 2016-02-15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사나 조직도 누군가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시도한 것이라면 그 안에서 아무 의미 없이 일하는 것은 `시도 당하는` 것이지만, 같은 일을 하더라도 나만의 목표와 의미가 있다면 내가 `시도하는` 일에 회사나 조직이 이용되는 것 뿐이라는 말 아닐까요? `수동적`이 아닌 `주체적`으로 움직이라는 뜻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