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하는 날 - 평창동 576번지, 그 남자의 Room Talk
양진석 글 사진 / 소모(SOMO)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그래, 나도 이렇게 살고 싶었어.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이 책은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가구 디자이너, 스타일리스트, 교수, 등등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젊은' 디자이너 양진석의 이야기이다. '이사하는 날' 을 주제로 이사에 대한 생활철학적 고찰이기도 하지만, 양진석이라는 발랄한(?) 젊은이의 라이프스타일기라고 해도 좋겠다.  

 

이사. 라고 하면, 일단 머리가 지끈 아파온다. 대왕까마귀신이라도 들었는지, 모으기만 하고, 버릴 줄 모르는 나는, 모으는 데 타고난 재주가 있고, 버리는데 젬병인 나는 특히 더 그렇다.   

나만 특출난게 아니라, 세상이 편해져, 아무리 포장이사라한들, '이사' 그 자체에 스트레스 받지 않는 사람은 드물지 싶다. 
저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기 그는 조금 다른 이야기도 펼쳐 놓는다.  

   
  이사는 누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짐 싸기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멍해지고 새로운 공간을 내 맘에 들도록 꾸밀 생각을 하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고 꾸미는 것은 분명 설레고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살면서 그리 자주 오지 않는 이사라는 기회를 남의 손에 맡기거나 그냥 빨리 해치워버려야 할 일로 단정 짓기엔 너무 안타깝다.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여유를 부릴 수 있다면 이사를 기회 삼아 모든 게 빠르게 진행되어야 하는 요즘 사회에 소심한 저항을 해보는 게 어떨까? 숨을 고르고 느리게 걷다 보면 뛸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하게 될 테니 말이다.  
   

 이사에 대해 지극히 사적인 정의를 내세우며, 이렇게 덧붙인다.  

자기 자신과 가장 가까운 공간인 집은 끊임없이 영감을 주는 곳이다. 다른 사람 눈치 볼일 없이 내가 해보고 싶은 대로 다 꾸며볼 수 있는 곳인 집을 책에서 소개되는 에피소드들처럼 천천히 자신의 추억들로 채워나가다 보면 어느새 훌륭한 공간에서 집들이를 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사는 고된 과정이지만 이 책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사소한 즐거움으로 모든 공간 이동자들의 수고가 위로받았으면 한다.
  

 

멋진 말이다. 내년 봄에 이사를 앞두고 벌써부터 스트레스를 쌓아가고 있는 나와 같은 이사스트레스증후군 환자인 나의 요정이 들어주는 세가지 소원 중 어릴때부터 바뀌지 않는 하나는 '공간 이동'이었다. 그 공간이동에 비해 시간도 훨씬 많이 걸리고, 초능력과는 거리가 먼 불운과 탄식과 삽질의 장이 될 것이 뻔하지만, 쨌든 나는 사소한 즐거움을 발견할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나 이사를 하는 '공간 이동자' 인 것이다.  

 

이 책이 '이사' 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저자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했는데,
그 아지가지하고, 세련되고, 어딘가 요새 세상 같지 않게 슬로우 슬로우인 저자의 라이프 스타일이
책으로 그대로 구현되었다. 종이질, 표지, 내지, 레이아웃, 사진이 정말 흠잡을 곳 없이 멋지다. 근데, 글도 아기자기 귀여워. 오버스럽지도 않고, 적당한 자학유머를 곁들이고, 자기만의 생활철학 조미료를 뿌려낸 재미난 글이다.  

이사도 일상이라면 일상인데, 일상의 이야기를 '일기장에나 쓰지 책은 뭐하러 내남'이란 생각 전혀 들지 않게 재미나게 이야기하고 있다.  

 

글과 사진 외에도 여러가지 포맷이 나오는데,  
디자이너인 저자가 상품 개발할 때 생각했던 ... 이라기 보다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것을 짤막한 동화로 몇 장에 걸쳐 그려 놓기도 했다.  

 

별 귀여운 짓을 다하고 있음  

어린 나이에 유학이며, 해외에서의 일이며 저자의 '이사'는 보통 사람보다 좀 더 스케일이 컸는지도 모르겠다.  
베를린, 파리, 암스테르담의 길고 짧았던 이사 이야기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암스테르담이다.  

 

;; 그러나 사진은 파리 사진 ... 어쨌든, 요런 일상 사진들도 되게 이쁘고, 배치도 이쁘게 해 놓았다.  

그러니깐, 암스테르담에서 말이다. 암스테르담에서 저자는
소소한 일상을 즐기는 암스테르담 주민들을 보고 부러워 하고, 즐거워 한다.  

   
 

관광객을 제외한 진짜 암스테르담 주민들은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듯했다. 집에 뭘 숨겨 놓고 사는 것인지 그들은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비밀스럽게 즐거운 뭔가를 혼자 꼬물꼬물 꺼내놓고 새롭게 만들고 또 가지고 놀며 사는 듯했다. 그런 궁금증으로 자전거를 끌고 지나가는 척 들여다본 유리창 속의 집들은 앙증맞기 그지없었다. 귀여운 화분에 심어 놓은 못생긴 식물들과 한두 개씩 모은듯한 각기 다른 모양의 예쁜 그릇들. 앉으면 부서질 것 같은 작은 의자까지 암스테르담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집에 보물 창고를 차리고 있는 듯 보였다.  

 
   

 사람이 보기 나름이라고, 나는 암스테르담에 대해 아주 암울하고, 위험하게 써 놓은 여행기를 본 적 있는데, 양진석의 눈으로 보고 느낀 암스테르담은 일상의 즐거움을 느낄 줄 아는 동화 속에 나오는 것 같은 사람들이다.  

소박하고도 아기자기한 삶의 형태는 햇살 좋은 날 못생긴 식물에 물을 주거나 비 오는 쌀쌀한 날 너무나 예쁜 찻잔에 홍차를 마시는 것과 같은 작은 일상에서 즐거움을 찾고 있었다.  

앞부분의 일부를 해외에서의 '공간 이동'에 할애하였고, 책의 대부분은 압구정에서 오랜 시간 살아왔던 그와 그의 가족이 '평창동'으로 이사하게 된 이야기들이다.  

  

인테리어 잡지에 나올 것 같은 방마다 햇볕 잘 드는 커다란 창문에 창밖으로는 정원에 다락방에 지하실에
꾸민 것도 사실, 현실의 집에선 있을 법하지 않은 모냥이긴 하다.

저자의 글, 사진, 외모까지, 어떤 사람이다. 는 것이 막 그려진다. 책에 얼핏얼핏 등장하는 저자의 모습  

 

ㅎ 부엌 앞의 온실에서 한 장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에 빠질 수 없는 꽃을 좋아하는 것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당연히 ^^)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어수선하지 않다. 저자의 톤이 그만큼 일관되기 때문이리라.
이사에 대한 팁을 이야기하는가 하면, 새로 들인 개 식구 이야기를 하고, 그릇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가구 리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책에서 진짜 눈물나게 웃은 부분이 있다. 유머러스한 글이긴 하지만, 새로 들인 식구 폴에 대해 이야기할때는 진짜 거짓말 안 보태고 눈물 흘리며, 배를 잡고 웃었다. 백만년 만의 큰 웃음. 하지만, 이건 아마 나만 특히 웃긴거겠지. 개 이야기와 똥유머에 약한 나   

 

사진, 글, 레이아웃, 표지, 면지, 제목, 글씨체, 폰트, 종이질, 목차 어느 하나 멋지지 않은 것이 없다며 맨 앞에 말했는데,
딱 사진 두 개가 갸우뚱 하게 만들었다.

하나는 타샤 할머니 책 읽는 설정샷 ( 너무 설정샷이었어) , 또 하나는 로얄 코펜하겐 이야기하면서 로얄 코펜하겐 세팅 되어 있는 사진에서 티매트가 로얄 코펜하겐과 완전 안 어울렸던 거.  

그러니깐, 딱 사진 두 개가 걸릴만큼 다른 건 다 멋진 책이었다는 이야기.  

 

눈에 보이는 소품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마지막 마무리는 이사를 잘 마치고, 초대장을 직접 만들어 집들이 하는 이야기이다.  

 

에필로그처럼 계절별 놀이를 넣어놓기도 했다.   

 

마지막 사진은 표지에도 쓰인 그의 방 한쪽 벽면  

부모님 방은 빨간색으로, 자신의 방은 파란색 톤으로 꾸몄다.
잡지 등에서 오려낸 파란색 계통의 사진들을 벽에 붙여 놓은 것이 바로 독특한 벽이고, 이 책의 표지로 뽑혔다.  

눈이 즐겁고, 마음이 즐거운, 예쁘고 재미난 책 읽는 '일상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게 해 준 책이었다.  

조금 치워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내년 봄의 이사, 공간 이동을 미리부터 슬렁슬렁 즐겁게 설레며 준비해 보고 싶은 마음도 약간 들었다.  

그 또한 일상의 즐거움이리 ..  

그렇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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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10-11-12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사고싶어욧!!!!!!!!!!!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