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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러스트
필립 마이어 지음, 최용준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아메리칸 러스트.. 책 표지의 녹슨 못처럼 이야기 속 주인공들의 삶은 팍팍하기만 하다.
한 때 부흥했던 철강 도시가 언제 그랬냐는듯이 죽은 도시가 되고, 도시의 좋았던 시절에 좋았고, 도시의 죽음에 함께 미이라화 되어 옴쭉달싹 못하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각각의 챕터는 주인공들의 이름으로 대신되고, 각각의 시점에서 이야기는 흘러간다.
아이작, 리, 포, 그레이스, 해리스
이들의 관계는 이렇다. 아이작과 포는 전혀 다른 타입이지만, 가장 친한 친구. 아이작은 연약한 천재, 포는 풋볼 유망주
리는 아이작의 누나이자 포의 애인. 아이작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똑똑했고, 현실적이어서 죽어가는 마을에서 탈출, 예일대에 입학하고, 좋은 가문의 남자와 결혼
그레이스는 포의 엄마, 해리스는 그레이스를 짝사랑하는 마을의 경찰서장
아이작은 녹슨 마을, 휠체어를 타는 대립만 해오던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고자 돈을 훔쳐 마을을 나선다. 마을 입구까지 동행하던 베스트 프랜드인 포와 빈 창고에서 쉬기로 하는데, 마을의 부랑자들이 그곳을 찾는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아이작은 조용히 그곳을 벗어나고자 하나, 포는 오기로 남는다.
이것이 포의 성격.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라는 것이 가능한 인간이라는 것이 현실에서건 소설에서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싸우고자 한다. 물러서지 않는다.
그런 포를 잘 아는 아이작은 뒤돌아 나왔다가 다시 포에게로 돌아가게 되고, 포가 남자들에게 위협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중 한 명을 죽이게 된다.
우연히 벌어진 필연적인 살인
아이작과 포의 삶의 궤적이 여기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한다.
아이작도 포도 이 더러운 마을을 벗어날 수 있었다. 기회도 있었고, 적극적으로 손 내미는 이들도 있었다.
어떤 오기로 그 둘은 마을에 남아 그들의 젊음에 녹이 스는 것을 방치하고 있었던 것.
아이작은 결국 마을을 떠나, 부랑자의 길을 걸으며 직싸게 고생하게 되고, 포는 그 자리에 있던 포의 피묻은 잠바와 포의 과거 전적 덕분에 범인으로 몰려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언젠가.. 아이작과 리의 엄마가 호수에 뛰어들어 자살을 하고, 리가 떠나고, 혹은 도망가고, 아이작이 엄마처럼 자살하려고 물에 빠졌을 때, 우연히 그 자리에 있던 포는 아이작의 생명을 구해낸다. 그리고, 그 때 그 쉼터에서 아이작은 포의 생명을 구하고.
각각의 인물들은 어떤 구렁텅이에 빠져서 절대로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아 보이지만, 그들 각각이 지닌 쉬이 찾기 힘들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빛나는 부분이 있다. 그게 이 소설의 매력이고, 등장인물들의 강렬한 매력이다.
포는 이 지역이 몰락한 게 아무렇지도 않았다. 몰락하는 걸 목격할 정도로 나이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포는 오로지 좋은 부분만을 보았다. 사물의 좋은 점만을 본다는 건 재능이야. 포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자라난 첫 세대거든. 새로운 세대인 거야. 우리 모두가 알아. 만물은 다른 방식으로 개선되고 이다는 걸. 포가 앉아 있는 바로 그 주변, 포가 어렸을 적에 웃자란 풀밭으로 기억하던 바로 그곳에는 이제 나무들이 조그맣게 자리 잡고 있었다. 떡갈나무, 체리나무, 자작나무, 땅은 자연의 상태로 돌아가고 있었다.
포는 사냥하던 곳 주위를 둘러보았다. 벌판 가장자리에 기다랗게 자리 잡은 나무들, 그 나무들은 좁고 가느다란 깔때기 모양의 지역을 따라 벌판 가장자리에서 시내를 향해 서 있었다. 이곳에는 어디에나 개울이 흘렀다. 이 지역의 독특한 점이었다. 이곳은 생명으로 가득했다. 단지 사람들이 그걸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었다. -151-
망해가는 마을. 몰락하는 그 곳에서, 사람들도 함께 몰락해간다. 는 것이 겉으로 보이는 그림이지만, 그것은 인간의 입장에서의 이야기이고, 자연은 소생하고 있고, 포는 그것을 즐기고 있다.
선택의 기로에서 늘 나쁜 것만 선택하는 포이지만, 감옥에 들어가게 되는 선택. 범인이 아이작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기로 한 것.은 그가 살아오면서 선택했던 것들 중 가장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이 부분이 이 소설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 이해하기 힘든 부분, 이 소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피앤딩인 이유였다.
그리고, 아이작의 선택도.
그들을 구하기 위한 어른들의 선택은 '희생'에 기반하고 있기에 그렇게까지 아름답지 않다. 떠밀릴대로 떠밀린 그들은 젊은이들을 밝은 곳으로 밀어주는 역할을 겨우 해냈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그들 주위의 도움과 상관없이 자신의 길을 간다.
책의 말미에서는 그 길의 끝에 찬란한 빛이 보이지만,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이야기가 계속된다면, 그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는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독자는 녹슨 마을을 주구장창 보다가 '찬란한 빛'을 보며 안도하며 책장을 덮고, '가장 아름다운 그 순간'을 음미하고 마음에 간직하게 될 것이다. 후에 어떤 지옥이 펼쳐지던, 그들의 선택은 아름다웠다. 그리고, 아름다웠던 선택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인생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어떤 형태이건간에 말이다.
이 책은 필립 마이어의 데뷔작이고, 작가가 어린시절을 보냈던 볼티모어 공장지대를 생각하며 쓴 소설이라고 한다. 놀라운 데뷔작! 은 흔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성립하는 것은 데뷔작에서는 작가가 가장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기 때문이라는 글을 본 적 있다. 필립 마이어가 자신의 얼마만큼을 이 이야기에 소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두번째 작품이 엄청나게 기대되는 대형 유망주라는 것은 분명하다.
칙칙하지만,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