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덮는 순간, 떠나고 싶게 했던 책을 추천해 주세요!
벤은 사진가가 꿈인 신탁 관련 변호사입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 히피짓도 하고, 집도 나오며 사진가가 되겠다고 노력하지만, 집에서의 원조가 끊기자, 꿈을 좇는 생활을 잠시 접고, 일단 변호사가 되어 돈을 벌기로 합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로펌 가장 구석의 지루한, 그러나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신탁분야 변호사이고, 신탁분야 변호사의 대빵은 벤과 비슷하게, 잠시 예술가(화가)의 꿈을 접고, 돈을 벌고 있는 잭입니다.
잭도, 벤도, 꿈을 접고 '잠시' 의 '잠시'라는 건, 이미 '돈', 즉, 편안한 생활을 '꿈' 대신 선택한 순간 '평생'을 의미한다는 것을 내심 알고 있습니다.
어느 날, 식탁 앞에 앉아 갖가지 물건들을 멍하게 보던 벤은 생각합니다.
"이제 떠날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 식탁 앞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갖가지 물건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흰 벽, 수공 소나무 캐비닛, 조리대, 주방 기구들, 장식장에 깔끔하게 쌓인 흰 웨지우드 접시들, 메모판에 핀으로 꽂은 가족사진, 냉장고를 장식한 학교 알림장과 애덤의 그림.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놀라게 했다. 공간을 채우고, 시간을 채울 것을 계속 찾아가는 과정이 축적되면 인생이 되는 게 아닐까?
'물질적 안정'이라는 미명 하에 이루어지는 모든 일은 그저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라 생각하지만, 그 생각은 가짜일 뿐이고, 언젠가 새롭게 깨닫게 된다. 자기 자신의 등에 짊어진 건 그 물질적 안정의 누더기뿐이라는 걸.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소멸을 눈가림하기 위해 물질을 축적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축적해놓은 게 안정되고 영원하다고 믿도록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꿈대신 돈을 선택한 아마추어 사진가이자 변호사인 벤의 이야기이자, 무명의 허세꾼인 사진가 게리의 이야기입니다. 벤이자 게리인 한 남자의 이야기이지요.
벤이 게리가 되었을 때, 벤은 모든 것을 뒤로하고 떠납니다. 그런 그가 뉴욕에서 지금까지 살아 온 그의 인생을 통째로 잘라버리고, 유령같이, 좀비같이, 미국을 횡단하다시피해서 달리고, 또 달려 도착한 곳이 바로 와이오밍을 거쳐 '몬태나' 입니다.
"동이 트자마자 루트 22 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향했다. 방금 눈을 치웠지만 군데군데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다. 낭떠러지로 떨어져 마지막 노래를 부르기 직전 간신히 제동을 건 게 두 번쯤 되었다. 나는 이를 덜덜 떨며 시속 30킬로미터의 속도로 엉금엉금 기었다. 히터를 세게 틀었지만 바깥 기온이 영하 13도라 별 효과가 없었다. 게리의 가죽점퍼와 카우보이부츠는 와이오밍의 겨울 날씨에 별 도움이 안 됐다.
(중략)
차 안도 춥고 바깥도 추웠지만 지평선에서는 더할 수 없이 멋진 풍경이 펼쳐졌다. 험준한 티턴산맥의 비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죽비죽한 산봉우리가 하늘을 향해 4,000미터 높이로 솟아올라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 산맥에서는 친근감이나 포근한 느낌을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구약성서 같은 태도를 지닌 산맥이었다. 어딘가 모르게 경건하고, 무자비하며, 숙명적인 느낌이었다. 티턴산맥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현재 내 고민이 별것 아니게 느껴졌고, 인간은 그저 유한하고 덧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절로 깨닫게 했다. 나는 티턴산맥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산맥이 나를 심판하는 눈으로 내려다보는 듯했다. 그러나 그 심판의 결론은 전적으로 내게 무관심하다는 것이었다. 티턴산맥에 비해 나는 너무나 보잘것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출처 : image 1, image 2,
와이오밍에 대한 동경 아닌 동경을 가지게 된 것은 <브로크백 마운틴> 이후입니다. (리뷰 '외로움조차 침범할 수 없는 고단함') 애니 프루의 '와이오밍 스토리'에도, 이안 감독의 영화에도, 구스타보 산타올라야의 음악에서도 한동안 헤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와이오밍을 지나, 아이다호를 거쳐, 몬태나에 도착합니다.
" 속도를 줄여 엉금엉금 기었다. 눈 벽을 잘못 뚫고 나갔다가 언제 죽음의 경계를 넘어설지 알 수 없었다. 길을 따라서 조심스레 앞으로 나아갔다. 앞길을 막는 건 없었다. 몇 시간을 엉금엉금 기다시피 차를 운행했다. 도로는 사라져 보이지 않고, 시야도 1미터를 넘지 못했다. 그래도 나는 계속 북쪽을 향해 갔다.
오후 1시쯤, 타지패스(아이다호 주와 몬태나 주의 경계에 있는 산길)를 지났다. 그러자 표지판이 보였다. '광활한 하늘의 땅'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표지판이었다. 몬태나 주였다.
하늘은 없었다. 눈의 돔뿐이었다. 루트 287 도로를 탔다. 앞에 깜박이는 제설차 불빛이 보였다. 제설차가 나를 위해 길을 열어주었고, 나는 그 제설차를 뒤따랐다. 새로 열리는 길을 따라 세 시간 동안 달려 90번 고속도로에 안전하게 도착했다."

출처 : image 1, image 2
몬태나에 도착하게 된 주인공, 그곳인 그가 지나 온 수많은 주와 같이 거쳐 지나가야할 또 다른 주일 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몬태나Montana 는 스페인어로 mountain 의 뜻이라고 합니다. 산이 많고, 겨울이 긴 '광활한 대지의 땅' Big Sky Country
"마운틴폴스에는 빈 방이 있는 모텔이 두 곳뿐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곳이 홀리데이인이어서 그곳을 택했다. 바람이 거세게 불었고, 눈은 중력과 상관없다는 듯 바람에 날렸다. 차 문을 열자 눈이 앞자리까지 몰아쳤다. 모텔 주차장을 걸어 나오는 동안 내 몸무게의 느낌이 감지되지 않았다. 마치 걸어 나오는 동안 내 몸무게의 느낌이 감지되지 않았다. 마치 걸어가는 게 아니라 바람에 내 몸이 날아올라 모텔 정문까지 다다른 듯했다.
나는 프런트데스크에 물었다.
"십이월 초에는 날씨가 늘 이런가요?"
"그럼요, 몬태나의 겨울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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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겹결에 몬태나에 관한 사진집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하는 주인공




마운틴폴스에 집을 구하고, 암실을 꾸미고, 거리로 나가 사진을 찍기 시작합니다.
작은 잡화점 겸 술집 바에서 찍은 냉담한 여주인, 이른 아침부터 술을 마시는 무뚝뚝한 주인, 허름한 주유소의 젊은 부부와 아기 등등
술집에서 만난 루디라는 능력있는 알코홀릭 기자를 집까지 데려오게 되고, 다음날, 루디가 그의 사진을 모두 가져간 것을 알게 됩니다.
루디에 의해 '몬태난'지에 '몬태나의 얼굴들' 사진을 연재하게 된 게리
그렇게 몬태나에서의 그의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소설가들, 화가들, 사진가들.. 소위 예술하는 사라들이 영감을 얻기 위해 '광활한 대지의 땅'을 찾는다고 합니다.
게리 역시 몬태나에서 '사진에 눈을 뜨게' 됩니다. 몬태나라는 자연은 위대하고, 인간은 왜소하다. 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장소 덕분이기도 하겠고, 모든 것을 본의 아니게 버리고 와서 두번째 인생을 시작하게 된 게리의 마음 속 스위치가 켜진 덕분이기도 하겠습니다.
그 몬태나에서, 몬태나의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이 책의 2부인데, 읽고 있으면, 그 춥고 광활한 도시에 발을 들여놓고 싶어집니다.
'책을 덮는 순간 떠나고 싶게 했던 책' 이라는 이벤트 제목을 보는 순간, 저는 물론 .. 떠올렸습니다. 그리스, 에게해, 조르바 ..
책을 덮고, 떠나고 싶었고, 떠났던 그 책. 벌써 이 공간에서 몇 번인가 이야기해서, 요건 패스. 겨울, 삿포로, <철도원>의 그 곳, 혹은 '오 겡끼 데스까~' <러브레터>의 그 곳에 대한 글을 써볼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차에 이 책, 더글러스 케네디의 <빅 픽처>를 읽게 되었어요.


읽는 내내 몬태나를 상상했습니다. 삿포로에 처음 갔을 때, 이것은 '다른 세상' 이라고 생각했어요.
사람이 태어나는 곳을 정할 수는 없지만, 죽는 곳은 정할 수 있다면(뭐 요것도 반반이겠지만) 삿포로에서 살다가 죽고 싶다고 생각했지요. 저는 겨울을 좋아하고, 눈을 좋아하고, 바다와 바람도 좋아합니다.
몬태나의 겨울은 어떤 것일까요?
책 속의 게리 서머스가 찍은 사진들은 '상처받은 몬태나'를 그대로 표현하였다고 칭송받습니다.
다소 지치고, 웃는 얼굴에조차 어디엔가 절망의 부스러기가 떠돌고, 사람도 도시도 그렇게 조금씩 닳아가는 모습을 몬태나의 산들은 가만히 무심히 지켜보고 있겠지요.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픽처>에 대한 이야기는 리뷰에서 다시 쓸 것이고, 강한 인상의 '몬태나'였지만, 그보다 더 강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습니다.
와이오밍이고, 몬태나고 너무나 멀어보이는 곳입니다. 그러니깐, 아마도, 99% 정도는 앞으로 살면서 갈 일도 없고, 찾아가지는 못하면서, 계속 동경만 하게 될 그런 동네로 여겨져요. 뭐,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