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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쪼가리 자작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1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2월
평점 :
이탈로 칼비노. 아, 글 잘 쓰게 생긴 이름이지 않은가. 이 이야기는 민음 세계문학전집의 속좁은 편집으로도 120페이지 정도의 짧은 우화이다. 줄거리만으로도 무지하게 재미있는 이야기다. 이탈로 칼비노는 현실에 기반한 우화를 썼는데, 여기서의 현실은 오스트리아와 터키의 전쟁이다. 전쟁에 나간 자작은 포탄을 맞아 몸이 반쪽이 나는데 (말그대로 반쪽!) 그 반쪽을 의사들이 완벽한 반쪽으로 살려둔다. 그 반쪽은 자작의 완벽한 '악'인데, 그렇게 악한 반쪽으로 돌아와 마구 반쪽을 내며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
여기서, 의사들이 그를 발견하고 살려내는 장면이 재밌다. 전쟁터보다 더 힘겨운 부상자들이 모인 병상에서 의사들은 신기한 것을 발견한다. 완벽하게 반쪽만 보존된 자작의 몸뚱이가 그것.
의사들은 모두 즐거워했다.
"우와, 신기한 일이야!"
금방 죽지 않는다면 의사들이 그를 살려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의사들은 자작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동안 불쌍한 병사들은 팔에 맞은 화살 때문에 패혈증으로 죽어 갔다. 병사들은 메다르도를 맞은 화살 때문에 패혈증으로 죽어 갔다. 의사들은 메다르도를 꿰매고 맞추고 혼합했다. 그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다음 날 나의 외삼촌은 한쪽 눈, 반쪽 입을 열었고 팽창된 한쪽 콧구멍으로 숨을 쉬었다. 외삼촌은 테랄바 가문의 강한 체질로 벼텨 낸 것이다. 이제 그는 반쪽이 되어 살아났다.
이야기의 묘사는 아이의 천진한 시점에서 전개된다. 악한 자작이 돌아오자마자 반쪽으로 자른 독버섯으로 죽이려고 했던 그 아이.
우화답게(?) 개성이 또렷한 재미난 인물들과 사건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유모 세바스티아나, 위그노교(페스트와 기근!), 악한 남작, 착한 남작이 모두 사랑에 빠지게 되는 오리와 염소 소녀 파멜라, 의사 트렐로니(오오오... 츠츠츠!)
악한 남작이 파멜라에게 청혼할 무렵 선한 남작이 돌아온다. 나머지 반쪽이 어째어째 치료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악한 남작을 빼고 난 나머지 부분은 '선'만 가지고 있는 선한 남작인 것이다.
완전하게 악한 것도, 완전하게 선한 것도 좋지 않다는 것, '인간세상이 너무나 복잡해져서 온전한 자작이 되고 나서도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는 없었다'는 것은 우화답게(?) 쉽게 쉽게 이야기된다. 그 이야기가 되는 과정이 이야기의 힘!을 느끼게 해주는 끈적끈적 점성을 지닌 이야기라는 거.
테랄바에서의 나날들이 흘러갔다. 그리고 우리들의 감정은 색깔을 잃어버렸고 무감각해져 버렸다. 비인간적인 사악함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비인간적인 덕성 사이에서 우리 자신을 상실한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