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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
커트 보네거트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당신은 사람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렇게 힘없는 우리를 돕고 있어요. 우린 그걸 알아요.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 잘 자요."
재미 없는데도, 남들이 하도 좋다고 해서, 나올때마다 혹시나 하며 읽는 작가가 있다. 코맥 매커시하고 커트 보네것. 커트 보네것의 책은 분량이라도 적어서, 꾸역꾸역 읽고 '역시나' 하곤 했는데, 코맥 매커시는 정말 구매는 다 했는데, 다 읽은 책이 단 한 권도 없다. 나랑 너무 안 맞는다는.
이번 작품, 상큼한 표지의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도 '혹시나' 하고 읽기 시작한 책이다. 억만장자 나오는 이야기라니, 어떤 식으로 욕할지 짐작은 가지만, 재미있을 것 같았거든. 이 작품이 작가의 역작 리스트에 들 것 같지는 않지만 ( 그래서 그런지) 재미있었다. '꿀벌 이야기에서 꿀이 빠질 수 없는 것처럼 사람 이야기에선 돈이 빠질 수 없는 노릇이다.' 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그렇다. 돈 이야기다. 사람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러니깐 돈 이야기이고.
미국에서 열네번째 부자인 로즈워터가의 U$ 87,472,033.61이 악덕 변호사(?) 노먼 무샤리의 눈에 들어왔고, 이 변호사는 이 돈의 콩고물, 워낙 떡이 크니깐, 콩고물만 얻어도 백만장자는 누워서 떡먹기. 그가 콩고물을 주워먹기 위해서는 현재 로즈워터가의 상속자인 괴짜 '엘리엇'이 정신병자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는 로즈워터가 담당 로펌의 파트너중 하나의 직속 따까리 변호사이다. 로즈워터가의 모든 기밀문서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고, 엘리엇을 정신병자로 몰, 아니, 그가 정신병자라는 것을 법정에서 증명하기 위한 자료를 모으기 시작한다.
엘리엇은 공상과학작가 트라우트를 좋아한다. 엘리엇에 대해 알기 위해 헌책방에서 어렵사리 트라우트의 <2BRO2B>를 찾아보게 되는데, 어느 더럽고 비좁은 서점에서 오달러에 팔리고 있는 <2BRO2B>를 찾아낸다. 바츠야야나의 <카마수트라>역시 같은 가격. 트라우트의 책 역시 더럽고 지저분한 책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트라우트와 포르노의 공통점은 섹스가 아니라 어처구니없이 관대한 세계에 대한 환상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고지식한 법 정신에만 사로잡혀 있는 악덕(?) 변호사인 것이다.
엘리엇은 완벽한 여자. 가냘프고 섬세한 여자, 교양 있고 연약한 여성. 하프시코드를 연주하고 6개국어를 매혹적으로 구사하며, 어린시절과 젊은 시절 유럽의 부모 집에서 피카소와 슈바이처, 헤밍웨이, 토스카니니, 드골 등을 만났던 여자, 실비아와 결혼하지만, 돈도, 집도, 실비아도 내팽개치고 헤매이다 '로즈워터군'에 정착한다.
"실비아, 나는 예술가가 될 거요."
"난 이 버림받은 미국인을 사랑할 거요. 비록 쓸모없고 볼품없는 사람들이지만, 바로 그게 나의 예술작품이 될 거요."
그렇게 로즈워터군에서 독특한 왕의 위치를 차지하며 자리잡게 된 엘리엇.
한 때는 촉망받던 젊은이였고, 맘만 먹으면 대통령도 될 수 있는 흠잡을 곳 없던 엘리엇.
그는 의용소방대에 집착하며 돈 없는 사람, 그러니깐, 그가 자리잡은 로즈워터군에서 돈을 퍼주며 부랑아같은( 묘사된 바로는 굶어죽기 직전인 사립탐정의 방같은 공간에서) 생활을 한다.
악덕 변호사(?) 노먼 무샤리의 계획은 엘리엇의 자격을 소실시키고 (정신병을 이유로) 그의 사돈의 팔촌쯤 되는 가난한 보험 판매원 프레드 로즈워터에게 재산을 넘기게 하여 그 과정에서 떡고물을 줍는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보험판매원 프레드 로즈워터에게로 넘어가게 된다.
불만 가득한 아내, 부자 레즈비언 여자친구를 졸졸 따라다니며 눈치 보는 아내, 아내는 집안 가구 위치를 늘 바꾸고, 프레드는 자기 집에서조차 매번 무릎을 가구에 부딪혀 피딱지 달고 다닌다.
커피와 데니쉬를 좋아하고, 사람 모이는 곳을 찾아다니며 보험을 판다. 주로 생명보험. 늘 쪼그라져 살던 그가 자살을 결심하고, 자살 장소를 찾아 다니다가 선조의 가문 역사 필사본을 발견하고, 기운을 차리고, 자신감에 차는데, 바로 그 순간, 문간에 나타난 악덕 변호사님.
그 후론 쇼다. 커트 보네것 다운 쇼. 여기부터 느끼게 된 낯익은 지루함이 반가웠다고나 할까.
" 이 직업에서 가장 기쁠 때가 언제인지 아나?" 프레드가 목수에게 물었다.
" 몰라."
" 어떤 사람의 신부가 찾아와 이렇게 말할 때라네. '당신에게 아이들과 내가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