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작년 연말,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휴먼스테인>이 나왔다. 작가의 네임벨류에 비하여, 그간 번역되어 나온 작품이 <에브리맨>이 다였던지라, 반가움에 구매. 그러나 저질제본으로 환불하고, 그 과정에서 읽기라도 했어야 하는데;; 다 읽지도 못하고 환불. (이럴때도 재빠른 알라딘 택배) <에브리맨>이라는 비교적 중편을 읽고, <휴먼스테인>을 읽으려니, 처음에 좀 안 읽히기도 했고.. 얼핏 생각나는게, 억울하게 해고당한 교수가 나이 한참 어린 청소부 여자와 사귀고, 작가인 친구가 있고, 인종차별 이야기도 좀 나올랑말랑 하고. 뭐 그랬던듯. 이번에 양장본 나온다는 이야기 들었을 때 제일먼저 장바구니에 담은 책이 바로 <휴먼 스테인>이다. 필립 로스와 '죽음'이라는 주제에는 약간 시들해졌지만, (봄이잖아!) 풀지 못한 좋아했던 마음 같은건 어디 안 가고 빛은 덜할지언정 마음 한구퉁이에 남아 있어서 그렇다. 알라딘 밤이 되도 1일배송 안되면, 교보에서 1일배송으로 주문해야지.

필립 로스 <에브리맨>
신간이 나오면 잽싸게 사는 편이다. (요즘은 안 그런다... 믿거나 말거나) 잽싸게 사고, 잽싸게 정리하고.
정리하는 기준은 앞으로 5년간 다시 안 볼 책. 종이질이 1년간 급격히 변할 책(이라이트!), 분권인책(이건 요즘은 좀 덜해지긴 했지만), 영미원서가 있는 책인데, 신간 쏟아져 나오는 것도 못 좇아 가는 판에, 5년안에 다시 읽을 책은 커녕 1년안에도 다시 읽기 힘든 것이 현실. 아무리 좋아도. 그래도 뭔가 느낌이 딱 와서, 이건 나의 꿈의 서재의 499권 중의 한 권이야. 싶은 책이라면, 쟁여둔다. 근데, 좋은데, 그 느낌이 천천히 올라오는게 있다. 자꾸 떠오르면서 구절이라던가 내용이 생각나는 책. 그래서 다시 주문. 이 경우에 세번까지 다시 주문하는 일은 없어.
데이비드 두쉬민 <프레임 안에서>
사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이 책 벌써 세번째 쌩돈주고 주문했거든, 오늘 아침에.
두 번이나 선물해버렸는데, 살 책들도 많은데, 자꾸 이 책이 생각나는거지. 난 딱히 사진책에 의존하지도 않고, 카메라를 도구 이상으로 쓰지도 않지만, 이 책에 나온 이야기들하고 사진은 좀 도움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인거야(아, 이 자신없는 말투라니;)
요즘 테리 리차드슨의 블로그를 염탐하고 있는데, 아, 진짜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사진인데, 왠지 뭔가 있어 보이는거지. 그게 '테리 리차드슨'이라는 이름을 알고 봐서 그런게 아닌가 몇 번이나 자문해 보아도, 그게 아니라, 뭔가 있어 보여. 그건 아마 이 책에 나온 '비전을 전하기' 라는 것에 찍사가 성공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내 눈은 그렇게 높지는 않아서, 책에도 그런 사진들이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냥 사진집도 아니고, 사진이 주인 여행기 같은 것도 아니고, 그냥 툭툭 찍어 놓은 사진 같은데, 글하고 잘 어우러져서 굉장히 인상 깊은 그런 사진들.


이 책들이 그랬는데, <본격소설>은 말그대로 본격 '소설'이고, 사진은 왜 들어갔나 싶을정도로 뜬금없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왠지 글과 맞물려서 가루이자와 흑백사진들이 자꾸 뭐라뭐라 이야기하는 것 같은 거다.
<동경산책> 아, 나 이 책 진짜 웃겨 죽어. 커피빈에서 보다가 막 킬킬거리며 테이블에 머리를 박은게 한 두번이 아니다. 여기도 사진이 뜨문뜨문 나오는데, 동경에 사는 웃기는 소설가 아저씨가 쓴 동경 이야기다보니, 일상적인 사진들인데, 그게 왠지 맘에 들어서 몇장 건너 나오는 사진을 막 신나게 낄낄 거리면서도 속으로 기다리게 되는 거다. 다음 사진을. 그럴 때면, 나도 뭔가 메세지를 전하는 사진, 이야기를 하는 사진을 찍고 싶다는 답지 않은 욕심을 부리게 되고, 그래서 또 저 책 <프레임 안에서>가 사고 싶어졌고, 이번엔 아무한테도 안 줄꺼야.
로버트 헉슬리 <위대한 박물학자>
나는 이 책이 참 좋은데, 덜 비쌌으면, 더 여러번 샀을거다. 근데, 이 책값은 더 비싸도 할 말 없는 퀄러티.
21세기북스에서 이 시리즈로 쭉 나오는데, 난 역시 이 책이 제일 좋다. 고기 사주는 친구가 내 서재에서 이 책 이야기 한 거 보고, 제목 물어보며 사겠다고 하는데, 고기 사주는 친구니깐, 사심없이 ... 응? 덥썩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을 주고, 후에 적립금 폭탄 맞았던 어느 달엔가 다시 구매. 책 안 읽힐 때 페이지만 넘기고 있어도 행복하다.
사람들이 책을 살 때, 그리고 '소장용 책'을 정할 때 여러가지 기준이 있겠지만, 내 기준이 바뀐건 번역가 ㄱ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이다. 오래가는 책이 짱이다. 정성들여 만든 딴딴한 책이 최고다. 그런고로 표지 외에도 종이질과 제본을 더 신경 쓰게 되었다나 뭐라나. 물론, 전제는 나를 확 끄는 책의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