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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적초 - 비둘기피리꽃 ㅣ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북스피어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미미여사의 중단편집 <구적초 : 비둘기피리꽃>에는 중단편 3개가 실려 있고,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진 세 여자가 주인공이다.
미야베 미유키의 초능력물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는데, <크로스파이어>부터 마음이 바뀌었다. 이 작품집 중 <번제>가 <크로스파이어>의 모태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스러질때까지>, <번제>, 그리고, 표제작인 <구적초>까지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재미를 가진 책이다.
첫번째 작품인 <스러질때까지>에서는 어릴적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그 이전의 기억을 상실한 도모코가 함께 살던 할머니가 발작으로 돌아가시게 되자, 유품들을 정리하며, 잃어버린 과거의 진실을 찾는 이야기, <번제>는 파이로키네시스(화염방사능력)인 준코가 잔인하게 살해당한 가즈키의 여동생을 죽인 미성년 범법자들을 죽이는 이야기. <크로스파이어>의 한 챕터 같은 내용인데, 이것도 재미났다. <크로스파이어> 에서 가즈키가 참 맘에 안 들었는데, 지 동생 잔인하게 죽어서, 손에 피묻혀가며, 복수 해줬더니, 배은망덕한놈같으니라구. 뭐 이런 심정. <번제>에서는 가즈키의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크로스파이어>까지 어느정도 납득이 가버렸다. 마지막 작품이자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구적초> 또한 재미나다. 형사인 혼다 다카코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 그 능력을 숨기고, 빠르게 승진하여 사복형사의 자리에 오른 여성이다. 세 작품중 그나마 이 작품이 '미스터리'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버버리맨 찾기, 설사병 걸린 범인 찾기, 유괴범 찾기 등..
세 작품 다 재미있었으니, 후회없는 독서였다..라고 말하기엔 찜찜한 것이,
일단 <크로스파이어>를 두 번이나 읽었지만, 등장인물, 내용, 사건이 겹치는 <번제>는 여전히 재미있었다. <크로스파이어>를 재미나게 읽은 사람이라면 놓치지 말아야할 작품, 혹은 <크로스파이어>를 접할 예정이라면 먼저 접해야할 작품. 이다.
단편소설이 단순히 내용이 짧다고 단편인 것은 아닐 것이다. <번제>와 <크로스파이어>, <나는 지갑이다>와 <모방범> 파일럿과 본편으로 봐야하는 걸까? 아니, 그 보다는 워낙 초기작품들이기도 했지만, 이것은 좋은 장편의 짧은 버전이라는 느낌이다. 이야기는 재미있지만, 미미여사의 장점들을 충분히 느낄 수 없는 미완성의 느낌이다. 그렇더라도 미야베 미유키정도 되면, 보통 내공은 아니겠지만, 캐릭터라던가, 사건이라던가, 기승전결이라던가 무언가 좀 어설프고( 꼭 이 작품이 오래전에 나와서 그런게 아니라) 뭔가 미진한 마음으로 마지막 장을 넘기게 했다.
그런 미진한 맘이 있긴 하지만,
미야베월드 책들 중에서는 꽤 재미 있는 편에 속하고, 표지가 참 예쁘게 잘 빠졌다는 것이 강점.
표지 앞면은 옛날 거리 모습이고, 뒷면은 책 중간에서도 나오는 벽에 가면들이 잔뜩 걸려 있는 사진이다.
앞면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고, 뒷면의 가면은 가면을 쓰고 살아야 하는 초능력자이야기를 의미하지 싶다.
'내가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첫번째 초능력녀의 죄책감과 육체적 고통, 두번째 초능력자인 준코는 나쁜놈들, 죽어 마땅한 놈을 단죄하지 않을꺼면, 왜 나는 이런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거야. 라며, 울분을 터뜨리고 어쩔줄 몰라하고, 마지막 초능력녀는 그 능력에 뼛속 깊이부터 의지해 오다가, 능력이 사라지고, '초'능력을 쓴 댓가로, 정상인의 삶으로 되돌아가는 것도 장담할 수 없는 불안에 빠지게 된다.
이런 복합적인 감정들은 주인공이 여자여서 더 잘드러났지 싶다. 다만, 그 캐릭터들을 단편에 맞게 잘 살리지 못했던 것이 살짝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