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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더 하우스 2
존 어빙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천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단숨에 읽게 만드는 존 어빙이라는 작가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재주.
인물, 배경, 이야기가 끊임없이 솟아나는듯하다. 작품이 긴 경우, 읽으면서 서서히 튠을 맞추어 가는데, 존 어빙의 이야기는 정말이지, 첫페이지부터 홀랑 빠져들게 된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두 장소는 닥터 라치의 세인트 클라우드 고아원과 올리브의 사과농장이다.
나에게는 닥터 라치가 호머 웰즈 못지 않은 주인공이고, 이 이야기는 고아 호머 웰즈의 이야기인데, 제목은 '사이더 하우스Cider House Rules' 직역하면, 사과 농장 규칙. 이다.
무튼, 낙태가 법적으로 금지되던 시절, 시골 꼴짝의 으스스한 고아원. 닥터 라치가 '신'으로 군림하는 그 곳의 이름은 '세인트 클라우드' . 신으로 군림한다고 해서, 독선적인 꼬장꼬장한 의사를 상상하지는 마시라. '자신의 규칙'으로 자신이 구하지 못했던 한 임산부에 대한 후회로, 고아와 임신부들을 위해 법을 어기면서까지 그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자신만의 엄격하고, 공평한 규칙으로 고아원을 운영하는 에테르 중독자일 뿐이다.
세인트 클라우드 고아원을 찾는 여자들은 두 종류이다. 고아를 낳고 사라지거나, 아이를 지우고 사라지거나.
황량한 기차역에 내려 입소문으로 들었던 '주님의 일'을 하는 닥터 아치를 찾아간다.
아이를 키우지 못하는 그들에게의 옵션이 무리하게 지우다가 죽거나 낳아서 버리거나의 두가지 밖에 없을때, 닥터 아치는 주님인듯.
메이드인 세인트 클라우드 고아 1호 호머 웰즈는 날때부터 '쓸모 있는' 고아가 되고 싶어 하는 똑똑한 고아이다.
닥터 라치를 도우며 왠만한 의사 뺨치는 의술을 가지게 된다. '낙태'에는 찬성하지만, 자신은 낙태를 하지 않는다며, 세인트 클라우드를, 닥터 아치를 배신하는 부분인데, 세상살이의 규칙, 아니 고아의 규칙에 충실하고, 선인처럼 굴지만, 마지막에 세인트 클라우드의 폭군, 야수, 무서운 멜로니에 의해 그 껍데기가 벗겨질 때 왠지모를 후련감을 느끼게 되는건, 그의 신념이 결국 위선이라고 생각되기 때문.
호머 웰즈가 사과나무 농장까지 신분상승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된 것도 바로 사과나무 농장집 며느리의 낙태였던것을.
고아원 이야기면서, 고전적인'두남자 한여자' 이야기도 있다. 미저리의 캐시 베이츠 저리가라 하는 무지막지한 멜로니도 나온다. 미저리와 다른 점은 읽는 내내 무서웠던 멜로니를 마지막에는 심정적으로 이해하게 된다는 것.
어쩌면 이야기를 이렇게 재미있게 할까. 생각이 드는 존 어빙의 <사이더 하우스>. <가아프가 본 세상>에서의 소설최대의 불행한 장면 같은것도 없고, 천페이지 넘는 장편이지만, 몰두해서 읽을 수 있는 재미난 책으로 가볍게 추천할 수 있다. 주인공인 호머 웰즈보다 닥터 라치에게 더 공감하고, 연민을 느끼는건 나뿐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