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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ssfire (Paperback)
Miyabe, Miyuki / Kodansha Amer Inc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책의 모양새를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고단샤 인터내셔널' 즉, 일본의 거대출판사인 고단샤에서 해외로 번역해서 소개하는 작품을 맡고 있는 출판사인가보다. 해외배급이 어떻게 되는지 거의 아이디어 없지만, 철저한 마케팅과 체계적 작가 소개로 자국의 작가를 해외로 알리는 것은 대단해 보인다. 책에는 아주 심플하고, 그러나 책 꽤나 사고, 읽는 나도 깜짝 놀란 책갈피가 들어있다. 책갈피에는 고단샤 인터내셔널의 웹사이트 주소가 적혀 있을 뿐이다. 고작 페이퍼백에 이렇게 신경을 쓰다니. (페이퍼백이지만, 책커버도 있는 책이다. 페이퍼백의 경우, 책끈이 없으므로, 책갈피와 같은 서비스는 너무나 저렴하고, 유용하면서 인상깊은 서비스지 않은가. 이 뿐 아니다. 뒤에는 리딩가이드(이런 것도 아마 처음 봤다.)도 실려 있고, 다음에 소개될 미미여사의 작품에(The Devil's Whisper) 대한 프롤로그와 첫번째 챕터가 여러장에 걸쳐 소개되고 있다.
이 책이 감탄스러운 것은 신경써서 만든 외관뿐만 아니다.
미미여사의 초능력 주제의 책들은 그닥 내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은 초능력을 소재의 하나로 잘 활용하여, 미야베 미유키의 가장 좋았던 작품들의 장점들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에 번역된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은 <브레이브 스토리> 빼고는 다 구매하고, 읽었지만, 여자 주인공 투 탑의 책은 처음 읽는듯하다. 첫장면부터 나오는 손으로 불을 쏘는 여자 준코. 그냥 '파이어' 하면, 불이 화르르 정도가 아니라, 순식간에 최고점으로 인간을 태우고, 쇠를 녹여버릴 수 있는 무기로써의 '불'이다. 미야베 미유키는 이런 만화같은 설정을 굉장히 섬세하고, 실제로 일어나는 일같이 묘사하고 있다. 그동안 보아왔던 최면이라던가, 염력이라던가 하는 것과는 차원이 틀리다. 준코라는 여자는 무척 복잡한 캐릭터이다. 자신이 가진 힘으로 나쁜놈들을 죽이고 다니는 여자. 라고 하면, 어떤 종류의 스테레오타입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미미여사가 창조한 캐릭터이다.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미미여사의 하드보일드..라고 하면, 나는 '외딴집' 정도가 떠오른다. 이 책 미야베미유키표 하드보일드다. 여러가지 면에서 얼마전에 읽은 가노 료이치의 <제물의 야회>를 떠올리게 한다. 자신의 방식으로 정의를 추구하는 준코의 모습은 히로의 모습과 겹쳐진다. 프로페셔널 킬러와 맞먹는 손에서 불이 나오는 초능력자 여전사..라. 흥미롭지 않은가! 미야베 미유키의 준코는 조금 더 복잡하고, 독자에게 여러가지 질문을 던진다. 그녀가 죽이는 이들은 법집행의 굴레를 빠져나가는 미성년자들이다. 이 부분 역시 <제물의 야회>에서 다루어졌던 주제이다. 인간이 아닌 악마를 찾아 '싸워' '태워버리는' 그녀의 모습은 평범한 겉모습과는 달리 엄청난 감정의 소용돌이를 내부에 간직하고 있으리라. 그녀만의 외로운 싸움에서, 그녀가 죽이게 되는 것은 악마와도 같은 소위 '스포츠 킬링'(재미로, 사람을 죽이는 것을 즐기는) 을 하면서 법의 심판을 받지 않는 미성년들에 그치지 않기에, 무고하다면 무고한 사람까지 죽이게 되기에 독자들은 다시 한 번 준코에의 감정이입에 망설이게 된다.
이 무고하다면 무고한 사람은 <낙원>을 떠올리게 한다. <낙원>에서는 살짝 보여주기만 했던 주제를 독자에게 내세운다. '죽음'으로.
준코의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는데, 또 한명의 여자 주인공은 치카코이다. 준코와 평행선을 그리며 정의를 추구하는 그녀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일까? 그렇다. 화재전담반의 형사다. 워낙 여자형사가 없는 경찰청, 남자들만의 세계에 그녀가 들어가게 된 것은 이런저런 우연과 실력이 좋은 타이밍으로 합쳐져서 이다. 노나미 아사의 <얼어붙은 송곳니>가 떠오른다. Mom이라고 불리우며, 사건 수사를 하는 40대의 치카코는 <얼어붙은 송곳니>의 다카코와 같은 상황이지만, 남자들만의 세계에 적응하는 그녀만의 어려움, 그녀만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 경찰조직에서의 그녀의 모습과 위치에 관한 이야기 역시 가볍지 않게 다뤄진다.
미야베 미유키가 그렇지 않은가. '범죄'와 관련된 모든 당사자들. 즉, 범인, 희생자, 범인의 가족, 희생자의 가족, 미디어, 목격자, 등에 각각의 무게를 두어 어느 한 곳으로 치우쳐 감정이입하지 못하게 한다. 독자에게 한면만 바라보지 말고, 가능한 다양한 면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은 그간 미야베 미유키의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여러가지를 새로운 형식과 전혀 새로운 주인공의 모습으로 발견할 수 있었다. 플러스, 아마도, 지금까지 내가 읽은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들중 가장 하드코어다.
위에 묘사한 범인들. 미성년자 범인들의 잔인한 범죄뿐만 아니라, 준코의 그들에 대한 처형 역시 잔인하게 묘사된다.
티피컬해 보이는 등장인물에 사 놓고도 한참을 미루고 있었는데, 정말 재미있고, 좋은 작품이었다.
미미여사, 이 책을 읽고, 한두가지가 아닌, 무척이나 많은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고 있는데, 그 중 가장 무겁게 다가오는 것은 이것이었다. What is the difference between justice and reven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