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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아프가 본 세상 2
존 어빙 지음, 안정효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2월
평점 :
<가아프의 세상> 원제 the World according to Garp 는 물론 가아프에 대한 이야기이다.
존 어빙은 작품을 쓸 때 플롯을 가장 중요시 여긴다고 한다. 그리고, 소설 속의 가아프와는 달리, 그의 인생은 너무나 평범하여, 자전적인 이야기를 쓸 수 없고, 그렇기에 소설 쓰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플롯과 상상력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아프가 살았던 장소라던가, 레슬링과 글쓰기만 알았던 가아프. 아내와 아들 둘, 젊은 시절 유럽에 머물렀던 것 등은 전직 레슬러인 작가 존 어빙의 삶과 꽤나 닮아 보인다. '거짓말 하기'가 직업인 작가가 하는 말들에 일일히 진위여부를 가리는 잣대를 들이댈 필요는 없겠지만 말이다.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때, (존 어빙의 책은 왜 죄다 두권으로 나오는 걸까! 그가 아무리 장편소설을 좋아한다고 해도 말이지) 제니 필즈, 가아프의 엄마이자, 그의 인생에 큰 역할을 했으며, 그의 인생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커다란 역할을 했던 여인, 제니 필즈의 이야기가 조금 독특한가. 싶고, 2권에 들어서기까지도 가아프의 창작 활동과 인간 관계에 그닥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제니 필즈는 부잣집 딸이었으나, 엄청나게 독립적이었고, <섹스의 이단자>라는 책을 써서 무지하게 유명해진다. <섹스의 이단자>라는 책을 쓰기 전에 그녀는 간호사였고, 비행기에서 포탄을 쏘는 가아프 상사가 입원했을때, 그를 ... (적당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뭐뭐하여, 아이를 임신하고, 그 아이의 이름을 T.S. 가아프라고 부른다. Technical Sergent Garp. 뭐, 이런 이름과 직위가 T.S. 가아프가 된다. 정자를 제공하게 되는 가아프란 인물도 독특하다. 공중에서의 사고로 파편이 뇌에 박힌 그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에서처럼 거꾸로 흘러가는 시간을 경험한다. 그 순간, 제니 필즈의 뱃속에서는 또 다른 가아프가 만들어지고 있고. 이 에피소드는 꽤나 묘한 거울의 느낌이다. 아빠 가아프는 죽고, 제니 필즈는 어린 가아프를 데리고 스티어링가가 만든 스티어링 학교에서 간호사로 일하게 된다. 엄청난 독서가인 그녀는 학교의 모든 강의를 듣고(순전히 그녀의 아들을 위해),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을 읽고, 도서관에 없는 책들도 찾아 읽는다. 가아프는 자라서 레슬링 코치의 딸인 역시나 엄청난 독서가인 헬렌과 결혼하게 되고, 던컨과 월터라는 두 아들을 가지게 된다. 바람도 피고, 친구도 사귀고, 글도 쓰면서 비교적 평이하게 흘러가다가 그 일이 생긴다.
사소한 무분별은 악운과 결합하여, 평범했던(?) 한 가족에게 정말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의 불행을 가져다 준다. 이 불행의 임팩트를 위해, 이 전의 모든 이야기들이 평이했나 싶을 정도. 가아프 가족에게 닥친 그 사건은 정말 엄청나게 불행하게 보여서, 방금 읽은 페이지를 다시 돌아가서 읽으며, 원치 않은 음미를 해야할 정도였다.
이제 소설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달려간다. 이전까지도 재미있었지만, 책 띠에 나온 '독자의 넋을 빼앗'는 부분은 아마 이 부분부터이지 않을까. <섹스의 이단자>라는 소설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저자인 제니는 원치 않았지만, 사회와 여성의 요구에 의해 그녀는 '여권주의'의 아이콘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런 그녀는 아들 가족을 보듬기 위해 평생 그녀의 직업이었던 간호사로 돌아가서 아들 가족의 치유를 돕게 된다. 그들의 치유는 서로를 치료하는 수밖에 없다. 그들이 잃은 것이 너무나 커서, 그것을 잃게 된 상황이 정말 죄책감의 바다, 하늘, 우주인지라 그들의 치유를 감히 기대하지 못하고, 어떻게 파멸할 것인가만을 조마조마하게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다.
존 어빙은 자신이 단편 소설에 재능이 없고, 그나마 괜찮은 것들은 장편 소설 안에 끼워 넣는다고 한다. 이 책에는 가아프가 쓴 단편 소설들의 전문이 때로는 자세한 줄거리가 나온다. 그 중에 <벤젠하버가 본 세상> 이라는 장편 소설이 있다. 제니 필즈의 아들이었던 가아프의 이름을 작가로 알리게 하는 계기가 되는 역시나 '여권주의' 의 이름 아래 찬반 양론이 거센 이슈가 된 책이다. 그 책이 너무 저질에 통속적이라 모자의 평생의 친구이자 편집자인 존 울프는 그 책의 1장을 '사타구니 어쩌구'라는 포르노 잡지에 팔아 버린다. 이 '사타구니 어쩌구' 잡지는 책의 후반부에 기대치 못하게 한번 더 등장한다.
이 소설이 단행본으로 출판되게 된 계기가 된 여자가 있는데, 그 여자의 표현을 빌리면, ' 이 책이 어찌나 병적인지 무슨 일인가 벌어지리라는 것은 알지만, 그게 뭔지 상상이 가지 않아요.' 라고 <벤젠하버가 본 세상>을 평하게 되는데, 요즘의 독자에게 이 정도의 수위가 '어찌나 병적인지' 의 범주에 들어갈지는 모르겠지만, <가아프가 본 세상>이란 책은 충분히 기괴하다. 그 여성 독자의 평을 이 책에 대입해도 무리는 없으리라.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버렸지만, 그래도 좋은 몇부분이 있어서 다시 읽고 싶 '은 것까지도 책 속의 책과 닮아 있다.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여권주의'와 자타의로 관련된 인물들이 가득하지만, 이 책은 여권주의 소설이 아니다. 책에 나오는 여성들이 소설 속에서도 보기 드문 강인한 성격의 캐릭터라는 것이 이 책을 '여권주의' 소설로 만들지 않는다면.
작가와 너무 닮은 작가가 나오는 소설이지만, 자전적 소설과는 거리가 멀다. 의심이 가지만, 심증에 그친다.
가아프가 훌륭한 작가였는가. 에 대한 확신은 없지만, 이 책 속에서 결국에는 '가아프를 사랑하는 사람과 가아프를 알고 지낸 사람' 만이 남게 되므로, 나 역시 그 카테고리로 자연스레 기꺼이 뛰어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