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로메
이곳 공기는 정말 상큼하네요. 이제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아. 저 안에서는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멍청한 의식에 대해 서로 물어뜯고 있고, 온갖 야만인들이 바닥에 술을 흘려가며 마셔대고 있고, 서머나에서 온 그리스인들은 눈과 볼에 덕지덕지 화장을 하고 머리는 꼬불꼬불 지진 채 옹기종기 모여 있고, 비취로 만든 긴 손톱에 팥죽색 외투를 걸친 조용하고 신비로운 이집트인들과 거친 말투의 짐승처럼 야만스러운 로마인들, 아! 난 로마 사람들이 정말 혐오스러워요! 거칠고 천한 것들이 고귀한 귀족인 채 거들먹거린다니까요.
젊은 시리아인
공주님 않으시겠사옵니까?
헤오디아의 시중
감히 공주님께 많을 걸다니 정말 무슨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 같아. 왜 그렇게 공주님을 쳐다보냐고?
살로메
달님을 보니 참 좋군요. 달님은 은화 같기도 하고 조그마한 은빛 꽃봉오리 같기도 하네요. 차고 냉정한 달님은 분명 처녀일 거예요. 순결한 처녀의 아름다움을 지녔어요. 맞아요. 저 달님은 한 번도 자신을 더럽힌 적 없는 처녀일 거예요. 다른 여신들처럼 자신을 남자에게 내맡긴 적이 없는 처녀 말이에요. - 본문 21~22쪽 중에서 |
이 책을 읽다가, 번역본이 나왔던 걸 생각해내고, 찾아 보았다.
예전에 후루룩 봤던 것에 비해, 비어즐리의 그림과 오스카 와일드의 극본은 꽤나 괴기스럽게 다가온다. '모든 비극은 다 달빛 때문이었어' 내지는 '달빛이 그날 밤의 비극을 암시하고 있었던게지' 하는 기괴한 달빛 아래 욕망의 뫼뷔우스띠. 살짝 맛이 간 듯한 등장인물들. 피, 왜곡된 애정 발현, 뭐 이런 느낌이다.
거기에 비어즐리의 그림... 자세히 보니, 악마적이다.
원서의 포스에 워낙에 감동받고 있던터라, 우리나라 번역본을 보고, 혀를 씨게 찼던 기억..
다 떠나서, 비어즐리의 그림이 1/3 사이즈로 확 줄고, 페이지 안에 테두리까지 쳐서 그 안에 갖힌 것은 매우 유감. 하다 못해, 표지의 포스만이라도 어떻게 좀 비슷하게라도 따라갔으면 안 되었을까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