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은 인간의 영역이고, 편집은 신의 영역

불량독자의 유형

첫째, 책이 가진 본질적 가치보다는 외적 장치에 민감한 독자들이다. 외적 장치란 주로 이벤트적인 요소를 말하는데, 이런 독자들이 많이 설칠수록 과비용의 부작용을 겪어야 한다. 책은 기초생활품이 아닌 가치기호품이다.
그러므로 텍스트의 가치와 지적 기호를 이벤트 상품과 쉽게 교환해버리는 독자야말로 불량 독자 중에 불량 독자다. 유사한 A와 B 그리고 C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에도 책은 그 변별성이 다른 상품에 비해 훨씬 뚜렷한 편이다. 그러므로 가치 지향이라는 본질이 훼손될 여지는 많지 않다. 그럼에도 이런 불량 독자들이 득실거리는 것은 99퍼센트가 출판사 탓이다. 판촉이란 이름으로 행해지지만 사실은 판촉이 아니라 굴욕적인 구걸행위에 가깝다. 2007년에 출간된 한 책은 10,000원의 정가에 5,000원짜리 쿠폰을 붙였고, 덕분에 대형서점에서 하루 500부 이상 판매량이라는 깃발을 휘날렸다. 마이너스 출고가 분명함에도 이런 행위를 저지른 출판사는 두고두고 '양아치 출판사'라는 오명을 벗을 수 없고, 쿠폰을 주워 책을 '얻은' 독자는 알게 모르게 불량 독자의 대열에 동참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려나? 저렴하게 책을 공급하는 게 독자 욕구에 부응하는 마케팅이라면 차라리 책값을 5,000원으로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둘째, 문제를 버리고 답만 추종하는 풍토와 그 추종자들이다. 고전의 반열에 오를 만한 명작의 출현이 전무하고 베스트셀러의 손 바뀜이 빈번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책이 우리 사회에 오래도록 남을 문제 제기를 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제 의식을 날려버리고 오직 잘 정리된 답만을 추종하는 풍토는 시대의 요구나 독자의 요구가 아니라 '고민의 빈곤'이 교활하게도 모습을 달리한 것에 다름 아니다. 쉽고 잘 정리된, 친절한 책을 만드는 것은 편집자의 미덕이요 소명이다. 하지만 불량 독자들은 이러한 친절 콤플렉스를 교묘하게 파고들면서 영혼을 제거한 책을 요구한다. 그래야 쉽고 읽기 편하다는 것이다. 서점에 가보라. 그들을 만족시키려다 보니 넋 나간 책들이 한 둘이 아니다. 
 
셋째, 나쁜 책의 손을 들어주는 독자는 불량 독자이다. 이 책을 읽으면 부자에 대해 알 수 있다고 말한다면 나쁜 책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야 부자가 된다고 말한다면 나쁜 책이다. 알맹이도 없는 책을 '우화'라고 말하면 그냥 눈 먼 심봉사가 되어버리는 독자라면 불량 독자다. 스토리텔링은 텍스트의 주제를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집필 방식이지 그 자체가 무조건 우성 유전자를 가진 것은 아니다. 나는 이야기만 99퍼센트이고 문제 의식은 빵점에 가까운 요즘의 베스트셀러들에 대해 우려를 가지고 있다. 출판사는 돈을 벌겠지만 그런 책은 나쁜 책은 결국 불량 독자만 양산할 뿐이다. 많이 팔아 잠시 달콤하겠지만 어느 순간 출판시장을 황폐하게 만들 수 있다.

넷째, 정당한 비판 의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그 독자는 불량 독자이다. 여기서 말하는 비평 의식이란 단순한 불평불만과는 다르다. 편집자는 비평에 늘 노출되어 있어야 퇴보하지 않는다. 불만이 있어도 입을 열지 않는 95퍼센트의 소비자는 결국 그 물건을 다시 소비하지 않는다. 불만을 드러낸 5퍼센트의 소비자들이 오히려 다시 구매할 확률이 높다. 단 이때 전제 조건은 자신의 불만이 생산자에게 전달되고 그에 대한 적절한 피드백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생산자들은 침묵하는 95퍼센트가 재구매 집단일 것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불량 소비자일 뿐이다.  

다섯째, 주관적인 판단이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그것을 완전히 상실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불량 독자일 가능성이 높다. 이 사람은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남들이 많이 읽는 책을 읽는다. 그래서 서점에 가면 항상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는 1위나 2위의 책을 무조건 잡는다. 광고 카피를 그대로 믿는 것은 물론 트렌드에 민감해서 유행하는 패턴이라면 결코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 결국 가치를 구매하는 독자가 아니라 기호룰 소비하는 대중일 뿐이다.
문제는 많은 출판사에서 바로 이 부류의 사람들을 메인 독자로 설정하고 그들의 요구와 만족을 추종하려 든다는 것이다. 내가 읽은 가장 경악할 만한 기획서의 한 구절을 소개한다. 더 이상 다른 설명이 필요 없으리라. "타깃 독자 : 책을 열심히 읽기보다는 유행하는 책을 사기 좋아하는 20대 중반의 여성층." 그런 20대 중반 여성층이 과연 얼마나 존재하는지 의심스럽다는 생각을 하기에 앞서 이게 과연 제정신을 가진 편집자의 머리에서 만들어진 기획서인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출간기획서의 메인 타깃이 책을 열심히 읽지 않는 여성이어야 한다니...  

 

 

 

 

 이홍의 <만만한 출판기획>을 읽다가 '불량 독자'의 유형에 대한 글이 나오길래 옮겨본다. 이 글의 앞에 나오는 논지는 '독자 요구에 충실하라' 는 것이 절대 명제인 출판계에서 편집자가 과연 불량독자를 해고할 수 있을까? 라는 물음에서 시작하여, 모든 기업이 종교적 신념처럼 신봉하고 있는 Customer is always right은 완전히 틀렸다. 고 말하는 (그 유명한!)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전 회장인 허브 겔러허의 말을 인용하고 있고, 출판계에서의 불량독자의 유형에 대해 위와 같이 나누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옮기지 않은 결론은 살짝 허무하다.

무튼 자조적인 결론은 그렇다치고, '불량독자'로 나누어 놓은 독자유형은 흥미롭다.
첫번째, 본질적 가치보다 외적 장치에 민감한 독자들이 불량독자라고 할때,이런저런 이벤트와 쿠폰을 놓치지 않고 챙기는 나 자신도 '불량독자'에 속할 것이다. 물론, '본질적 가치'(라고 쓰니 거창하기는 하다만) 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나는 '불량독자'가 아니다. 라고 외쳐볼 수도 있겠지만, 이벤트와 쿠폰, 할인에 달려들어 구매함으로써, 그 책을 적절하지 못한 방법으로(이 경우엔 출판사에서 돈을 써서 그렇게 만든 것과 다름없다.) 베스트셀러에 올려 놓는데 일조한다면, 나는 여전히 외적 장치에'도' 민감하긴 하겠지만, 당당한 기분과는 영 거리가 멀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이 책의 다른 챕터에 더 자세히 나와 있는데, 베스트셀러의 순위를 매길때, 이벤트, 쿠폰, 할인행사로 팔린 분량을 제외하는 방법이 있긴 하다.

두번째,  문제를 버리고, 답만 추종하는 독자들. 이것은 비단 책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 부류의 독자들이 있는 책은 '책'으로 안 치면 안 될까? 종이를 묶어 놓았다고, 다 책은 아니지 않을까?

세번째, 나쁜 책의 손을 들어주는 독자들. 나는 여기서 아마 제목이 안 나온 책들이 '마쉬멜로 ..'라던가, '씨크릿..'이라던가, '인생수업'이라던가의 메가 베스트셀러들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기저기서 짜집기 한 '이야기'들'만' 가득찬 한심한 책들. 나의 '베스트셀러 혐오기피증' 은 이런 '나쁜 책의 손을 들어주는 독자들' 이 많은 것에 기인한다.

넷째, 정당한 비판의식을 가지지 못한 독자들 역시 불량독자라고 했다. 이 기준은 너무 가혹한 것 같긴 하지만, 맞는 말이긴 하다. 내 경우에는 '정당한 비판의식'을 가질만한 '책을 보는 눈'이 부족해서. 라고 변명해본다. 그런면에서 이 책은 내게 '책을 보는 눈'을 길러주는데 도움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주관적인 판단이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상실한 독자들. '책을 열심히 읽기 보다는 유행하는 책을 사기 좋아하는 20대 여성층' 이라니.. 쪽팔리고, 할 말 없다.

'소비'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비단 공정무역의 세계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각있는 좋은 책'소비'를 하는 것은 '좋은 책'을 출판하기 위한 '좋은 출판사의 노력'을 이끌어낼 것이며, 그것은 다시 '불량 독자'가 아닌, '좋은 독자'를 만들 것이다.  책 한권을 사더라도, 리뷰를 한 편쓰더라도, 책에 대한 잡담을 늘어놓더라도, 항시 '좋은 독자'가 되어, '좋은 책'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응원을 보낼 것이다.

...라고 썼지만, 난 출판사에게 엄청 가혹한 까칠한 독자라는거! 좋은 책, 나쁜 책 가리지 않고, 응원과 비판을 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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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02-22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하이드님은 절대.....마지막 항목의 불량독자가...될 순 없으시잖아요? =3=3=3

하이드 2009-02-22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난 못 알아들었어 d-_-b 메피님이 무슨 얘기하는지 절대 몰라요. 도리도리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