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발굽 소리가 들리더니 작은 소년이 팔을 휘저으며 지친 말을 재촉해 집 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톰은 일어서서 길 쪽으로 걸어갔다. 그 소년은 집까지 전속력으로 말을 몰고 와 모자를 벗더니 노란 봉투 하나를 땅에 떨어뜨리고는 말머리를 내돌려 다시 내달렸다.
톰은 소년의 뒤에 대고 그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지쳐버린듯 몸을 굽혀 바닥에 떨어진 전보를 집어 들었다. 그는 전보를 손에 들고 햇볕을 받으며 아까 앉았던 의자로 가서 앉았다. 그는 마음의 준비를 하려는 듯 언덕과 낡은 집을 한 번 쳐다 보았다. 그러고는 봉투를 뜯었고 되돌릴 수 없는 네 단어와 사람, 사건, 시간을 읽었다.
톰은 천천히 전보를 접고 또 접어 엄지손가락만하게 만들었다. 그는 집으로 들어가 부엌을 거쳐 작은 거실을 지나 자기 침실로 들어갔다. 그는 옷장에서 검은 옷을 꺼내 의자 등에 걸쳐 놓고 하얀 와이셔츠와 검은 넥타이를 의자 위에 올려 놓았다.
그런다음 침대에 누워 벽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방금 위의 글이 나오는 부분을 읽고, 짠해지고, 눈가에 물이 찼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는 대사 없이도 작은 동작들로 관객의 공감을 120% 끌어낸다. 글에서라면. 위의 글 다음에 나오는 글. 위의 글에서 연상되는 누군가의 장례식 이야기는 그 누군가가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너무나 사랑했던 누군가였기에, 모두의 사랑을 받았던 누군가였기에, 죽음도 피해갔어야할 누군가였기에 가슴이 아프다. 그의 친구와 가족의 슬픔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너무 슬퍼서 일단 책을 덮고, 페이퍼를 끄적거린다.
이 책은 정말 재미있는 대중소설이다.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아서, 이런 이야기를 하나의 책으로 쓰는 작가란 정말 대단하다. 감탄하게 만든다. 제임스 딘이 나오는 <에덴의 동쪽> 영화도 볼 생각인데, 영화 줄거리를 보니, 정말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의 1/10도 안 나오는듯 하다. 이런 책이 일일드라마로 나오면 어떨까? 진짜 재밌을 것 같은데 말이다. 이런 스케일은 미국에서도 안되고, 오직 '영국'에서만 가능한 스케일이라 하겠다. 지극히 미국적인 이야기를 영국에서 만드는 건 좀 웃기긴 하지만.
살리나스 계곡, 미국 개척기 시대에 여러대에 걸친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등장하는 그 많은 대단한 여자들, 인상 깊은 사이코패쓰도 등장한다. '존 스타인벡'의 '에덴의 동쪽'에 '사이코패쓰'가 등장할 줄은 몰랐다;; 형제들 이야기도 많이 나오는데, 형과 동생의 이야기가 무척 흥미롭게 진행된다. 여러 인간군상과 세기가 바뀌는 순간의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들(내가 워낙 이런 이야기 좋아하니깐),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 이것의 근간은 성서인데, 나는 성서가 근간이 되는 인류애 이야기 따위 좋아하지 않지만, 이 이야기는 마음에 새겼다. 이제 2권을 읽기 시작한터라 아직 많이 남아 있지만, 중간에 한 번 쉬어주고, 다시 달려들어야지.
1권이 500쪽이 넘더니, 2권은 650쪽이 넘는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길쭉한 판형은 이렇게 두꺼우면 상당히 읽기 불편한데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나는 또 다른 작가는 애니 프루. 그녀의 와이오밍 스토리, <브로크백 마운틴>이다. 척박한 자연과 인간 이야기.



* 영화 정보 찾으려고, 검색했더니 왠 쓰레기 드라마 이야기만 잔뜩 나와서 포기하고, 배우 이름으로 검색해서 찾았다.
그러고보니, 그 드라마는 왜 제목이 '에덴의 동쪽'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