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지침서 (양장)
쑤퉁 지음, 김택규 옮김 / 아고라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처음 접하는 쑤퉁의 책이고, 거의 읽어볼 일이 없었던 중국 작가의 책이기도 하다.
'처첩성군','이혼 지침서', 그리고 '등불 세 개' 의 세가지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처첩성군'은 홍콩의 아주문학에서 집계한 20세기 중국 현대문학100에서 31위를 랭크했고, 장이모우 감독 공리 주연의 영화 '홍등'의 원작격이기도 하다고 하는 쑤퉁 작품 중 가장 유명한 단편중 하나이다.

여대생 쑹렌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부잣집에 첩으로 들어간다. 네째부인이 된 그녀는 첫째 부인의 아들보다도 어린 나이다. 당차고, 의외의 면이 있는 매력과 젊음으로 천줘첸 나리를 휘어잡는다. 이 감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약간 막막한데, 일단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굉장히 생생하다. 네명의 부인들은 물론이고, 하녀, 아들, 손자 등 잠시 잠깐 등장하는 이들의 모습도 강하게 남는다. 첫째 부인은 보통 첫째부인이다. 싶은 그런 모습이고, 둘째 부인인 줘윈은 겉으로는 천사, 안은 사갈이다. 주전부리를 좋아하는 모습으로 나오는데, 겉으로 호호거리면서, 주머니에서 각종 씨를 꺼내어 까 먹으며, 속으로 음모를 짜는 모습이 상상만해도 섬뜩하다. 셋째부인은 극단 여배우 출신으로 거침없는 성격의 미인이다. 그리고 쑹렌.

이들 부인들이 있는 대가족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들은 셋째부인과 쑹렌이 있는 방 사이에 있는 우물의 존재로 인해 긴장감이 고조된다. 아마도 첩이었던 여자 두 명이 빠져 죽었다고 전해지는 우물. 쑹렌은 그 근처에만 가면, 알 수 없는 기운을 느낀다.
짧은 이야기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강렬하다.

표제작이기도 한 '이혼 지침서'는 고통스러운 유머를 끌어내는 단편이다. 원작이 좋은 것이 첫번째 이유겠지만, 번역 또한 생생해서 읽는 맛이 있었다. 남편이 수많은 날들 중,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이혼하자' 고 한다. 상황상황들이 웃기면서 얄밉고, 불쌍하고, 그렇다.

주인공인 양보가 이혼얘기를 꺼내고 아내는 화가 나서 말도 안 하고, 밥도 안 하며 시위를 하는데, 남편인 양보는 컵라면을 국물 한방울까지 홀짝홀짝 다 먹으며 그런다. "세상이 발전하다 보니 일본인들이 이런 라면까지 발명했군. 덕분에 이제 여자가 남자를 굶기는 것도 불가능해졌어." 완전 밉상이다. 아내가 '정신병자' 라고 욕하자 그 옆을 지나가면서 코를 후비곤 코딱지를 파내어 바라보며 "맞아, 나는 정신병자야" 그러면서 코딱지를 탁, 퉁겨낸다. 뭔가 사생결단하고, 몸에 붙은 털이란 털은 다 뽑아 버리고 싶은 얄미움의 지존 아닌가. 아내가 이 수, 저 수 써보다 '도대체 왜?!' 냐고 묻자 "혐오스러워서 그래. 혐오스러운 느낌이 하루하루 심해져서 결국 증오가 되었어. 어떨 때는 밤새 잠이 오지 않아. 불을 켜고 코까지 골며 달게 자는 당신을 보면 너무 꼴사나와 보여." "여름에 당신 겨드랑이에서 나는 냄새가 혐오스러워" "당신 새집 같은 파마 머리, 또 밤늦도록 틀어대는 홍콩 연속극하고 저 개떡 같은 <비앙카>(브라질Tv 연속극;;) "책하고 신문 절대 안 보는 거하고, 맨날 나한테 사랑이나 나랏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거." 등등등. 생활의 후줄근함이 진하게 묻어나는 멘트들.

아내가 불쌍한가? 이 단편을 끝까지 읽고 나면, 주인공인 양보가 죽도록 불쌍해진다. 당신이 양보와 비슷한 남편이라면 눈물도 훌쩍 날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쑤퉁은 독자의 감정을 들었다 놨다 하며 예리하게 조정한다.

마지막 단편인 '등불 세 개'는 오리치는 비엔진과 녹색 두건 샤오완의 이야기. 전쟁 중에 일어난 이 슬픈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체호프를 떠올렸다.  시대의 슬픔. 약자인 민간인들 중에서도 약자인 어린 소녀와 바보 소년의 이야기. 비극. 웃어서 더 슬픈 이야기. 바보라서 더 슬픈 이야기.  

쑤퉁과의 첫만남은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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