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가쿠타 미쓰요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나는 어슴프레한 술집 구석에서 깨달았다. 변한 것은 책이 아니라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케이크 사 먹을 돈을 절약했던 소녀는 집을 떠나 사랑을 알고, 그 후에 이어진 아름답지 못한 결말도 배우고, 친구를 잃고 또 새롭게 얻고, 예전에 알던 것보다 더 깊은 절망과 끝없는 희망을 알고, 잘 되지 않는 것과 바라는 바를 간절히 기원하는 방법도 배우고, 하지만 어떤 노력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게 있다는 사실을 매일 확인하고, 그렇게 내 안에서 조금씩 늘어나거나 줄어든 무언가 바뀔 때마다 마주한 이 책의 의미가 완전히 바뀌었던 것이다.    -'여행하는 책'中-  

헌책들을 쇼핑백 두개로 나누어 넣고 헌책방에 팔러간다. 헌책방 할아버지는 '이 책 정말 팔꺼야?' 라고 묻는다. 그저그런 번역소설이었기에 그렇게 책을 팔고 시간이 흘러, 대학교때 네팔로 배낭여행을 가게 된다. 네팔의 한 헌책방에서 시간을 떼우다가 일본어로 된 책을 한 권 고른다. 책을 후루룩 넘기고 덮으려던 찰나, 자신의 이니셜과 그림을 발견하게 된다. 그 때 떠오르는 지난 기억. 일본에서 팔았던 책을 네팔에서 만나게 되다니, 이런 우연이. 책을 사들고, 근처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다. 기억하고 있던 것과 다른 점들을 맞추어 가며 나도 모르게 책에 몰입하게 된다. 네팔에서 짐이 많아져 그 책을 다시 네팔의 만물상에서 팔게 된다. 또 시간이 흘러.. 그 책과의 인연은 묻혀지고, 직장에 들어가 아일랜드로 출장을 가게 된다. 시간이 남아 서점에 들어갔는데, 헌책방이다...  

판타지같은 이야기지만, 전혀 없을법한 이야기는 아니다. 책과의 인연, 책이 있는 만남과 헤어짐. 인생의 강물은 천천히 때로는 빠르게 멈출때까지 끊임없이 흘러가고, 각각의 인생은 한권의 책과 같아서, 각자의 이야기가 담긴 페이지를 넘긴다.

'그와 나의 책장' 은 서로 비슷한 잡다한 취향을 가진 남녀가 만나 책장을 합치는 앤 패디먼의 '서재 결혼시키기'가 떠오르는 단편이다. 의외로 그런 상황은 많이 일어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취향이기에 두 권씩 있는 책들은 더 낡은 한권을 팔면서 그렇게 책장을 합쳐나간다. 서재가 이혼해야하는 그날까지. 함께 하던 방에서 자신의 책을 골라내는 여자. 소소한 상황과 생각들이 마음에 와닿는다. 이 단편과 '불행의 씨앗', '미쓰자와 서점'이 제일 재미있었다.

'불행의 씨앗'에서 사귀던 남자가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와 사귀게 되고, 여행을 갔다가 다리가 부러지는 등 나쁜일이 자꾸 일어나자 여행지인 대만에서 점집을 찾아간다. 필담으로 주고받은 결과 남자가 읽던 자기 방에 있던 누구 책인지 모르는 그 책이 '불행의 씨앗'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그녀는 그 책을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였고, 지금은 전남친의 여자친구인 그녀에게 전해주며, 남친에게 꼭 전해주라고 말한다. 그리고 후에 시간이 흘러흘러,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는데, 그녀의 지난 생활이 파란만장하다. 그 '불행의 씨앗'은 어쨌냐고 하자, 사실은 자신이 아직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불행이랄 거 하나도 없었어. 나는 웃는 일도 우는 일도 없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담담한 매일이 되풀이되는 게 불행이라고 생각해. 그런 의미에서라면 이 책이 내게 있었던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행복했다고 생각해. - '불행의 씨앗'中-

'미쓰자와 서점'은 웬지 저자의 이야기 같다. 사실 리뷰를 쓰려고 다시 책을 들추는 이 순간까지 저자후기로 착각하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저자의 책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나는 책을 많이 읽는편이라고 생각하지만, 책에 대한 애정이 있다고 말은 못하겠다. 좋아하는 책만큼 싫어하는 책도 많으니깐. 저자는 '시시한 책이란 없다' 라고 말한다.동의하지 않지만, 그런 말을 하는 저자의 심정이 이해는 간다. 너무 밍밍할뻔 한 단편집이지만, '책' 이 중간에 있어서 재미나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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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09-01-31 0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재미있을 것 같아요. 보관함에 담아갑니다~

하이드 2009-01-31 0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티님 취향에 맞으실지도 모르겠어요. 저자의 책에 대한 애정이 담뿍 느껴지는 단편들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