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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기행 ㅣ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24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송은경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3월
평점 :
카잔차키스 전집의 첫번째 책으로 '가볍게' 고른 <지중해 기행>이었는데, 엄청나게 '무거워져' 버린 마음.
전집의 첫번째 책이고, 앞으로 한권씩 채워 나갈 예정이니, 하드웨어에 대해 먼저 말하자면, 종이의 질도 좋고, 책만듦새도 탄탄해보여,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을 것 같다. 책방의 먼지를 다 끌어들일 것 같은 아이보리 표지에는 일찌감치 비닐 표지를 씌워 놓았다. 책을 펼칠 때 힘을 줘서 펼쳐야 하는 단점이 있다.
이 책은 카잔차키스가 이탈리아, 이집트, 시나이 반도, 예루살렘, 키프로스를 여행한 여행기이다. 짧은 분량이지만, 그 대부분은 이집트와 시나이반도에 할애된다. 그 중에서도 시나이 반도에서의 이야기가 가장 강렬하게 와닿고, '시나이 반도 여행기'의 강렬한 인상은 후에 나온 <영혼의 자서전>이라던가 <최후의 유혹, <수난>, <미할리스 대장>과 같은 카잔차키스 대표작에도 이어지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를 만나고, 이집트에서는 변화의 조짐과 젊은 열정들을 만난다. 순례여행인 시나이 반도에서는 내면의 자신을 만나고, 다툼한다. 뭐랄까, 그의 그리스인으로서의 풍모와 세계관은 (그가 그리스인이어서 그런지, 그여서 그런지, 무튼) 잊고 있었는데, 세상사를 초월하는 동시에 현대사와 인류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과 애정을 보여준다. 그의 가장 열렬한 논쟁 상대는 신, 혹은 자기 자신이다. 내면의 끝없는 격렬한 싸움의 연속이다.
그런 그 조차, 시나이 반도에서 희열과 만족감에 자신과의 싸움을 잠시 포기하고, 순수하게 그곳을 느낀다.
두 개의 산 사이, 1천 5백 미터 고지에, 사각의 요새처럼 탑과 총안(銃眼)을 갖춘 시나이 수도원이 세워져 있다. 나는 수도원의 큰 마당을 내려다본다. 중앙에 교회가 빛나고 그 옆에는 자그맣고 하얀 모스크가 서 있다. 이곳에서는 초승달과 십자가가 사이 좋은 형제처럼 함께하고 있다. 그 주위로 눈 덮인 수도승들의 방과 저장실, 게스트하우스들이 하얗게 반짝인다. -124쪽-
시나이 수도원, 지금은 카타리나 수도원으로 불리운다. 그곳에서 그는 조르바를 떠올리고, 조르바에게 받은 편지를 떠올린다. 아, 조르바. 항상 맘에 담고 있었지만, 한동안 수면위로 나오지 못했던 그 이름을 만난 순간, 반가운 옛친구를 만난것 같았다. 그의 변함없이 초인간적인 스케일에는 차라리 웃음만 나온다. 모세가 계명을 받고, 그를 따르는 이들을 인도했던 그 곳.에서 새로운 십계명을 들고 내려오는 자유로운 인간 조르바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울지도 모른다.
시나이반도길에 만나는 베두인족들의 씀씀이, 수도원의 사람들, 그 와중에 계속되는 신을 향한 질문.
이런 모든 것들이 이 책을 쉬이 읽히지 않게 한다. 카잔차키스의 내면을 엿보는- 정말로, 엿보는 것 밖에 못한다. 인정도 이해도 못하는 한심한 독자- 것 외에, 단편적인 단상들만을 마음에 담을 뿐이다. 그 외에 역사와 신과 유대인에 대한 나의 무지는 읽는 내내 갑갑했다. 반성.
이 책은 지중해를 단순히 '기행' 하는 것이 아니라, '순례'이자 한 남자의 '자신과의 싸움'이다. 연결되는 다른 책들을 읽고,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오면 느끼게 될 것들이 기대된다. 그때까지는 부족한 독서나마 이렇게 마무리할 수 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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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정복할 수 없다는 건 누구나 안다. 그러나 인간의 가치는 <승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승리>를 향한 몸부림에 있다. 좀 더 분투하다 보면 <승리>를 향한 몸부림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보상을 비웃으며 용감하게 살다 죽는 것- 인간의 가치는 오직 이것뿐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 훨씬 더 힘든 것이 있으니, 당신을 기쁨과 긍지와 무용(武勇)으로 채워 줄 보상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바로 그것이다.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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