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 사랑
시라이시 가즈후미 지음, 한희선 옮김 / 레드박스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읽은 연애소설이다. 제목에 나이 들어가 있는것 진심으로 싫어하지만(특히 여자 나이, 삼십대)
제목과 표지의 거부감을 딛고 읽기 시작한 책은 밤에 읽기 시작해서 마지막장을 덮고야 말만큼 재미있었다.

이렇게 통속적인 인물들이라니!
미녀도 이런 미녀가 없다. 길에 다니면 남자고 여자고 다 쳐다본다. 잘나가는 푸드저널리스트에 입양된 집도 부자, 자신도 부자. 그녀가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인 미호
그녀의 남자친구는 정치가가 될 야망에 불타는 정치부 기자. 아버지는 유명한 정치가. 한가락 하는 집안. 이녀석은 첩의 자식이었는데, 본처가 죽고,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갔다. 학생때 전국에서 아이큐가 가장 높게 나오기도 했던 천재. 주변의 세상이 너무 느리게 흘러간다는둥의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밷는 캐릭터. 키는 185에 몸매는 근육질에 탄탄. 그의 이름은 조지.

미호와 어릴적 같은 반이었고, 미호 동생 마사야가 물에 빠져 죽을뻔 한 것을 구해준 유지. 뒤에 용을 업은 (용문신한) 야쿠자다. 그의 캐릭터는 약간 리오우를 떠올리게 했다. 과묵버전의 리오우. 유지는 미호를 좋아한다.

이렇게 두 남자와 한 여자가 있다.

굉장히 뻔해보이는 캐릭터들 아닌가. 근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푸드저널리스트인 미호의 캐릭터는 우리나라 '전.문.직.' 드라마와 달리 연애질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는 모습으로 나온다. 그리 자주 나오지는 않지만, 나오는 음식 이야기들은 메모해서 적어놓고 싶을정도였다. '전자렌제 레시피' 장에서는 요리의 대가이자 인기인인 후루이치씨가 나온다. 전자렌지 레시피들이 나오고(육수 우리기,피클 만들기, 등등 네이버 지식인에 등재해도 되겠는걸?) 후루이치라는 대.단.한. 여자의 인생관이 흘러나온다. 좀 길지만 옮겨보면

대개의 일이란 게 참을만한 것이고, 언제든지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지. 있잖아, 자기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이라면 언제부터라도 시작할 수 있어. 결혼과 출산, 육아가 족쇄라고 생각하는 여자들이 많은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야. 인간은 자신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존재니까. 말하자면, 자기 목숨과 바꿀 수 있는 건 자기 자신뿐인 거야. 아무리 남편을 위해, 자식을 위해 산다고 허세를 부려도 내 목숨과 바꿀 수는 없잖아. 그러니까 자신의 꿈과 희망을 실현하고자 한다면 어떤 어려움도 떨치고 뭐든 할 수 있어. 그걸 주위의 누군가나 환경 탓으로 돌리는 건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는 증거지. 설령 가사와 육아에 쫓긴다 해도 남편이나 자식도 하루에 몇 시간은 반드시 자잖아. 그 시간만은 온전히 자기만의 시간으로 만들 수 있어. 자지만 않으면 얼마든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거야. 하루 수면 시간을 세 시간 줄이면 한 달에 90시간이 남아. 1년이면 1080시간이고. 하루 평균 노동시간인 여덟시간으로 나누면 1년에 135일이란 시간을 버는 셈이지. 그 생활을 10년 계속하면 1350일. 즉 거의 4년 가까이 되는 시간을 남편이 회사에서 일하는 만큼 손에 쥐게 되는 거야. 그 4년이 있으면 하고 싶은 건 뭐든 다 할 수 있어. 인간은 그렇게 많이 자지 않아도 돼. 하루 일고여덟 시간은 자줘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을 찾지 못한 게 아닐까?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만 찾게 되면 아무도 자는 것 따위에 여덟시간이나 쓰려고 하지 않을 거야.

뭐. 그럴 수도 있겠지. '다이어트가 제일 쉬웠어요' 라고 말하던 여자가 떠올랐다. 여기에 나오는 여자들이 미인에 능력 있고, 강하고, 주관이 뚜렷하다. 그 점은 꽤 맘에 든다. 주인공 외 독특한 캐릭터로 미호의 엄마 시나에를 빼 놓을 수 없다. 약물중독에서 벗어나 꿋꿋이 살고 있는 가스미도 남편을 잃고 씩씩하게 아들을 키우며 사는 후지모토도.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모는 평범하지 않으나 이야기는 결국 우리네 이야기처럼 흘러간다. 책소개에 나오는 것처럼 결말의 의외성이라던가 하는건 없었지만, 잔잔하고 맘에 드는 결말이다.
연애 이야기를 표방하고 있지만, 결국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열심히 잘 살자. 라는 거.
그렇다면, 연애불감증인 나에게도 충분히 납득할만한 이야기.
'사랑이 지겨워진 삼십대 여자를 위한 핫초콜릿 소설!'이라는 띠지따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럭저럭 맞는 이야기.

"제대로 살지 못하는 녀석은 제대로 죽지도 못해. 생과 사는 하나야. 지금 너는 용이 될 수 없어. 죽고 싶다는 소리나 하는 녀석은 절대 대단한 사람이 못 돼."
미호는 유지의 눈빛을 되받아쳤다. 나도 전부 다 말한 게 아니라고 마음속으로 말했다.
"그럼 지금의 나는 뭐가 될 수 있다는 건데?"
입을 일부러 뾰족하게 하고 쏘아붙였다.
유지는 잠시 생각하는 표정이 되었다.
"뭐, 기껏해야 쥐나 토끼 정도겠지."
이윽고 그는 히죽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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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2008-12-17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이 지겨워진 삼십대 여자를 위한 핫초콜릿 소설'이라니;;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은 문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