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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즌 빈스 ㅣ 블랙 캣(Black Cat) 12
제스 월터 지음, 이선혜 옮김 / 영림카디널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블랙캣 시리즈를 먼저 이야기해야겠다.많은(?) 추리시리즈가 나오지만, 블랙캣시리즈는 진짜 매니아의 냄새가 난다.블랙캣 시리즈는 세계 각국에서 추리문학상을 수상한 작품들을 모아서 책을 내는데, 미국의 애드거앨런포우상이라던가 영국 골드대거상, 일본 추리작가협회상 등이 주로 나온다. 적당히 재미있고, 쟁쟁한 수상작이니 재미던, 문학성이던, 시류성이던 명성이던 무언가 하나 이상은 보장한다. 추리라는 장르 밑에 여러 하부장르의 전형성에서 벗어나는듯한 작품이 많다는 것이 지금까지 블랙캣 시리즈를 읽어온 내 감상이다. 정말 좋아하는 아이슬란드의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의 작품이 나온 곳도 블랙캣이고, '캘리포니아 걸'과 '폭스이블', '와일드 소울'이라는 독특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블랙캣 시리즈 덕분이다. 그리고, 이제 제스 월터라는 낯선 이름을 가진 작가의 '시티즌 빈스'를 만났다.
'시티즌 빈스' 의 빈스는 '멋진 인생'이라던가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 에서의 제임스 스튜어트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빈스는 지구상 최고의 악당은 아니지만, 약간 비열하고, 약간 인생에 냉소적이고, 약간 범죄자들하고 어울리고, 약간 사기를 치고 다니기는 하지만 말이다. 도넛가게에서 도넛을 만드는 일을 해서 '도넛'이라고 불리는 빈스를 '도넛 빈스'가 아닌 '시티즌 빈스'라고 제목 지은 것은 평범한(?) 시민인 빈스를 이야기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매일같이 새벽 1시 59분 2시 자명종이 울리기 직전에 일어나 알람을 미리 끄고, 그 시각 깨어있는 도시의 온갖 부류들이 모이는 '샘스 피트'라는 술집으로 간다. 그곳에 모인 범죄자, 포주, 창녀, 경찰, 등과 함께 포커도 치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며 노닥이다가 약간의 불법을 해서 돈을 벌고, 인심도 쓴 후, 도넛을 만들러 '당신을 허기지게 만드는 도넛' 이란 이름을 가진 그의 직장으로 간다. 도넛가게에서 일하고 점심이 되어 집. 그리고 잠. 그리고 새벽 1시 59분 일어나서 샘스피트로..
그러던 어느날 그에게 두가지 일이 일어난다. 하나는 난생 처음으로 '투표권'을 받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어두운 면이 있는 곳에서 온 킬러의 방문을 받는 것이다.
이야기는 이란에서 미국 인질을 잡고, 협상이 벌어지고 있고, 카터와 레이건이 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다.
아쉬운 점은 작가는 미국의 시대상과 '평범한 시민' 빈스의 상황을 교차시키고 싶은 야망이 있었던듯하나 완벽하고, 감동적으로 엮이지는 않았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스를 둘러싼 사기동료들, 그를 쫓는 형사, 그가 도망온 세계, 창녀 베스와의 약간의 로맨스까지의 이야기들은 꽤 생생하다. 정치이야기, 시대이야기가 잘 녹아나지는 않았지만, 책을 읽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된 것은 아니고, '투표권'으로 시작된 한 인생의 새로운 시작, 구제라는 주제를 드러내주는데 일조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착한(?) 추리소설 ( 이건 요코야마 히데오의 착함과는 거리가 멀고, 제임스 스튜어트의 착함이라고 해두자. 물론 악당도 많이 나온다! 착한 악당도, 나쁜 악당도!) 이라니.
이야기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평범한 시민, 도넛만드는 빈스의 이야기이다.
그는 회의하고, 냉소하지만, 다시 놓칠지언정 가끔 보이는 희망을 부여잡기도 한다. 그것이 내게는 가장 용기있는 모습으로 보였다.